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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비안그레이 Jun 09. 2024

문틀에 매달린 희생양

14화. 오르는 것은 내게 지옥이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하교할 때가 되었다. 아이들은 우르르 밖으로 몰려나갔다. 나도 신을 갈아 신고 분주히 길을 나섰다. 운동장에서 아버지의 오토바이 배기음이 들려왔다. 그는 두리번거리며 나를 찾고 있었다.


『성희 아빠다!』 다른 아이들이 먼저 외쳤다. 아버지의 오토바이는 학교에서 유명했다. 그가 자주 나를 태워 등하교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나는 종종 놀림을 받았다. 심지어 거지라는 소리도 들었다. 대부분의 아버지는 차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막노동 옷차림까지 생각하면, 아이들이 왜 그렇게 말했는지 이해는 간다.


나는 애써 모르는 척하며 고개를 숙이고 걸음을 재촉했다. 아이들의 비웃음이 내 마음을 후벼 팠다. 『성희 저기 있어요!』 같은 반 아이들이 내 위치를 알렸다. 아버지는 하찮은 엔진 소리를 뽐내며 다가왔다.


『가자, 딸.』 그는 실없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의 입술 끝을 끌어올린 하늘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집이 달동네였어도, 학교로부터 15분밖에 안 걸렸다. 그 길이 힘들까 봐 매번 다리가 되어주려던 그가 바보 같았다. 고마우면서도, 창피했다. 그는 내 가방을 받아 핸들에 걸었다. 나는 다리를 길게 뻗어 뒷자리에 올라탔다. 그 오토바이가 부끄럽기도 했지만, 가파른 달동네를 올라가는 것도 정말 싫었다. 한 번도 그런 적은 없지만, 언젠가 뒤로 데굴데굴 굴러가게 될 것만 같았다.


오토바이가 학교를 떠나 덜컹거리며 출발했다. 나는 아버지의 허리를 꽉 붙잡았다. 금세 집이 가까워졌다. 아버지는 종종 뒤돌아보며 말을 건넸다. 바람 소리와 오토바이 소리에 묻혀 무슨 말인지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가 미웠다. 미안했다. 그의 등에 고개를 파묻고 숨어버렸다. 내 몸이 빨리 자라서 이 오토바이가 나를 태우지 못하는 날이 오길 간절히 고대했다. 아니 기도했다.


지금 와서 그 언덕과 그때의 기분을 생각해 보면, 시지프스의 형벌이 떠오른다. — 그리스 신화에서 시지프스는 여러 번 신을 속인다. 이에 큰 바위를 영원히 산 정상까지 굴려야 하는 벌을 받는다. 바위는 항상 정상에 다다르기 전에 굴러 떨어진다. 그럼 시지프스는 다시 처음부터 굴려 올린다. 카뮈는 시지프스가 끝없는 고통과 헛된 노력 속에서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의미를 찾는다며, 시지프스를 행복한 사람으로 상상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인간의 삶이 이 형벌과 같다고 했다.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바위를 밀어 올리는 순간에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만약 당시에 이 이야기를 알았다면, 아버지의 등 뒤에 숨어 어떤 희망도 품지 않았을 것이다. 어차피 계속될 거라고 생각했을 테니까. 하나, 나는 다 자라 더 이상 그 오토바이를 타지 않게 되었을 때 이 이야기를 접했다.


영원한 반복, 무의미한 노동... 이를 보자마자 웃어버렸다. 단지 우습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의 철학은 세기를 넘어서까지 깊은 통찰을 제공하고 있다. 다만, 그냥 싫었다. 싫었기에 싫은 이유를 찾아보니, 그것이 옳지 않았다.


바위는 굴리다 보면 마찰과 충격에 의해 마모되어 사라진다. 물리적 법칙과 현실적인 관점에서 재고해 본 것이다. 산을 오르내리는 동안 바위의 표면은 깎이고 조각들이 떨어져 나간다. 이에 바위의 크기와 무게는 점차 줄어들고 결국 완전히 형태를 잃는다. 바위를 굴리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시지프스의 형벌은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는 게 나의 논리이다.


고통이 영원해서는 안된다. 무의미한 노력은 없다. 아버지의 오토바이는 영원히 오르내리지 않았다. 아무런 의미가 없지도 않았다.




오르내린다는 이야기를 하니 또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 나와 남동생 서우는 문틀을 짚고 오르내리는 놀이를 좋아했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우리가 그렇게 노는 것을 싫어했다. 특히나 할머니는 내가 문지방을 밟을 때마다 경멸의 눈초리로 꾸짖었다. 그것은 아버지의 이마를 밟는 것과 같은 짓이라고 했다. 하지만 서우나 소희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우는 언젠가 아버지를 대신할 장남이고, 소희는 아직 어리다는 이유에서였다. 핑계였다. 모르긴 몰라도 나는 그녀의 눈에 가시 같은 존재였다. 문지방 때문에 혼이 날 때면 체벌의 공포를 넘어 아버지의 이마를 밟았다는 죄책감마저 들었다. 그러나 나는 쉽게 길들여지는 아이가 아니었다.


또다시 서우와 함께 문틀을 타고 놀았다. 어머니는 내려오라고 윽박을 질렀다. 우리는 말을 따르는 척하다가 그녀가 등을 돌리자마자 경쟁하듯 다시 빠르게 올라갔다.


어머니의 진노는 빗자루에 실려왔다. 그녀는 첫째가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며 나를 매질했다. 이어서 문짝 위를 철봉처럼 붙잡고 매달리게 했다. 내려오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힘이 풀려 아래로 쳐질 때면 발바닥을 때려 바짝 오르게 했다. 아예 떨어졌을 땐 머리채를 잡고 사방으로 흔들었다. 한 번 더 내려오면 죽이겠다며 이를 악물었다.


서우는 무릎을 꿇고 목 놓아 울었다. 그 눈물에 서린 미안함이 나를 더 아프게 했다. 속으로 누나는 괜찮아, 나 괜찮아하며 절규했다. 제발 살려달라는 외침은 어디에도 닿지 않았지만, 이 말만은 그에게 꼭 전해지길 바랐다.


팔을 들고 있을 힘도 없어 매달릴 수 없다고 하자, 내 머리를 문틈에 밀어 넣고 문을 닫아 목을 졸랐다. 발버둥 치는 동안 얼굴이며 귀밑이 다 까졌다. 목 옆에는 선명한 자국이 남았다. 이날 이후 서우는 종종 혼자 문틀을 타고 놀았고, 나는 다시 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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