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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비안그레이 Jun 06. 2024

순두부에게 맞아 당한 수모를 갚다.

13화. 그저 강가에 앉아 기다리면 원수의 시체가 떠내려가는 것을 보리라


이전이야기. 「교사의 소리가 들리던 것이, 소동이 벌어지는 동안에는 들리지 않았다. 아마도 잠시 어디인가 들른 듯했지만 마침 다시 소리가 들렸다. 『와! 진짜다! 3반 선생님 올라온다!』 아이들은 금세 도로 뛰어올라오면서 도망치듯 흩어졌다. 우리 반 아이들도 재빨리 뒷문 앞에 줄을 섰다. 찰랑찰랑하는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며 모두가 들을 수 있을 만큼 명확해졌다.  나를 때린 아이도 세상의 모든 순진한 얼굴을 하고 차분히 줄을 섰다. 나 역시 뒤에 서서 이 수모를 언젠간 되갚아주리라, 불타는 눈동자에 그를 담았다.」


담임교사가 문을 열자 아이들은 각자의 자리를 찾아갔다. 나는 가방을 내려놓지도 않고 임신한 햄스터를 살피러 갔다. 사육장을 둘러보다가 눈을 질끈 감고 얼어붙었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끔찍한 모습으로 죽어 있는 회색 햄스터였다. 어미 햄스터는 이미 출산을 한 모양이었다. 새끼들은 털이 없고 불그스름해서 8주 된 인간의 배아 같았다. 어미의 공격을 받아 대부분 온전하지 못한 상태였다. 어미는 날쌔게 돌아다니며 다른 성체들을 공격했고, 틈틈이 자기 새끼도 베어 물었다.」


교사는 환기를 시키기 위해 앞쪽부터 차례로 창문을 열었다. 바람이 점점 세차게 내 오른뺨을 찰싹거렸다. 바로 옆창문이 열릴 때 눈을 떠 교사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동작을 멈추고 이마를 치켜들어 눈을 크게 떴다.

 『아…』 나는 입안 가득 망개떡을 문 것처럼 말이 막혀 나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교사의 손을 끌어다 사육장을 만지게 했다. 그녀는 영문도 모른 채 손을 맡겼다가 기함을 토하며 물러났다. 다른 아이들은 무슨 일인지 궁금해하며 다가오려 했다.

『오지 마!』 교사는 다급하게 제지했다. 아이들은 놀라 어쩔 줄 몰라했지만, 평소보다 단호한 언사를 마지못해 따랐다.

 『다들 자리에 앉아서 눈 감아. 사육장 절대 보지 마. 보는 사람은 벌로 일주일 동안 혼자 남아 청소할 거야』 그녀는 신신당부하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이들은 꿈쩍거리는 호기심을 억제할 수 없었다. 눈을 살짝 뜨고 서로의 눈치를 살피다가 일제히 나를 바라보았다. 『성희야, 왜 그래? 햄스터 죽었어?』 한 아이가 속닥거렸다. 나는 애써 모르는 척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른 아침, 날 때린 아이는 공교롭게도 내 바로 뒷자리였다. 『야, 똑바로 말 안 해? 저기 뭐 있어?』 그는 내가 앉은 의자를 툭툭 차며 반응을 촉구했다. 발끈하는 마음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는 교사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턱을 치켜들며 실눈을 떠 나를 주시했다. 철저하게 가식적인 그 모습이 치 떨리도록 혐오스러웠다. 그러나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몰라, 네가 가서 봐.』 어미 햄스터의 어긋난 모정과 그들 사회의 혼란이 빚어낸 참혹한 비극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내심 그가 벌을 받기를 바랐다. 성격이 급하고 무모한 그는 직접 확인하러 갈 것임이 분명했다.

예상은 궤적을 따라갔다.

『으악! 뭐야!!!』 그는 소리를 지르며 나자빠졌다. 바닥에 드러누워 전신을 비틀었다. 황급히 자세를 바꿔 사지를 땅에 대고 엎드렸다.  『우웩!』 몇 차례 헛구역질하더니, 아침밥을 모두 게워 냈다. 생각보다 훨씬 더 나약한 녀석이었다. 벽돌인 줄 알았더니 순두부였다고나 할까?


한창 시끄러운 와중에 담임교사가 목장갑을 낀 남자 교사와 함께 돌아왔다. 남교사는 문제의 사육장을 들고 신속하게 빠져나갔다. 담임교사는 옆구리가 터져 흐물 해진 순두부를 보건실로 데려갔다. 나는 부축받아 나가는 그를 보며 고개를 숙이고 큭큭거렸다.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다른 아이들이 나를 혐오스럽게 쳐다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더 크게 비웃었다. 아침에 겪은 수모를 이렇게나마 보상받는 것 같았다.

점심 식사 시간이 되자 어머니가 교실 문을 두드렸다. 그녀는 예의 바르게 담임교사와 대화를 나눴지만, 얼굴이 금방 홍조를 띠었다. 교사와 어머니는 남아있던 사육장을 복도로 옮겼다. 아버지는 그것을 받아 밖에 세워 둔 오토바이에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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