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집중할 때만 들리는 소리 삐---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모른다. 세상이 고요하고 나에게 집중할 때 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안 하면, 한 곳에 멈춰있으면 어김없이 나를 찾아와 삐--- 하고 경고음을 날렸다. 내 증상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검색을 했다. 병명은 이명이었다.
치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그래 맞아. 하지만 이명은 명확한 치료법도 완치도 없다는 부정적인 환자들의 이야기가 인터넷에 빼곡하다. 병원을 찾아갔다. 역시나 이명이라고 한다. 언제부터냐고 묻길래 언제인지도 정확히 모를 만큼 오래되었다고 하니 이명은 초기 치료가 중요하다고 한다. 이명뿐 아니라 모든 병이 초기 치료가 중요한 거 아닌가? 아무튼 의사는 몇 개의 알약을 처방했고 나는 집에 와서 약봉지를 방치하다 결국 한 알도 먹지 않았다. 어차피 이 약을 먹는다고 완치가 되지 않을 터......
오히려 이명에서 해방되는 방법을 검색했다. 소리가 날 때 백색소음을 켜라, 안 들린다 안 들린다 하며 자기 최면을 걸어라. 그 어느 하나 나에게 와닿는 방법이 없었다. 의식하면 더 들리고 나에게 집중하면 더 들리는 삐---소리. 그렇게 삐---소리가 귀와 몸 그리고 내 정신까지 점령했다.
해결책은 찾았다. 정신없이 바쁘게 살면 들리지 않는다. 손을 부지런히 움직여도 들리지 않고 새로운 곳에 가도 들리지 않는다. 아이들과 있으면 들리지 않는다. 이명이 들리는 건 나에게 집중하는 순간이었다. 멍 때리지만 않으면 찾아오지 않는 걸까? 내가 아닌 타인의 소리에 집중하면 오지 않는 걸까? 그럼 나에게 무관심해져야 한다는 걸까? 모르겠다. 내 마음의 소리에 집중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는 불치병. 나에 대한 무관심만이 이 병의 치료법인 건지. 씁쓸하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인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 스트레스 안 받고 사는 사람이 과연 있기나 한 건지 그렇다고 내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고 있냐? 그것도 아니다. 나를 객관적으로 표현해 보자면 긍정적인 편이고 타인에게 관심을 많이 쏟는 편이 아니며, 어떤 일을 할 때 멀티가 안 된다. 또한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성적이며 남들보다 조금 급한 편이다. 맡은 일은 기한 내에 끝내야 하고 약속은 먼저 가서 기다리면 기다렸지 절대 늦어서 미안하다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 내가 손해 보고 말지 남에게 피해가 가는 일은 정말 하고 싶지 않다.
근데 또 오지랖은 장난 아니다. 아이가 어렸을 때 아파서 병원에 가는 버스 안이었다. 뒷자리에 앉은 중학생들이 쉴 새 없이 십 원짜리 욕을 서로에게 해댔다. 그냥 웃으며 장난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내 곁에 있는 아이 귀에 욕이 자꾸 꽂히니 신경이 쓰였다. 몇 번을 참고 또 참다, 도저히 못 들어주겠다는 생각에 결국 입을 떼고 말았다. “학생들 여기 학생들만 있는 것도 아니고 어린 아기들도 있는데 욕은 그만하면 안 돼요?” 아이들 반응은 눼눼눼. 들은 체 만 체 또 십 원짜리 욕을 촤라락... 그냥 내 아이의 귀를 막는 편이 더 좋은 방법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마음을 비우고 버스 앞쪽에 빈자리가 생겼길래 얼른 자리를 옮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 기사님이 격노하며 소리친다. “젤 뒤에 앉은 학생들!! 여기 너희들만 버스 탔어? 무슨 욕을 그렇게 크게 하냐고!! 너희들 어디 학교야?” 순간 버스 안에는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학생들은 시선이 따가운 걸 그제야 느낀 건지 버스가 멈추자마자 후다닥 모두 내렸다. 분명 내릴 정거장도 아닌데. 기사님의 외침으로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한편으로는 학생들도 약육강식의 세계를 아는 건지 아줌마보다는 아저씨를 무서워하는구나 하며 속이 쓰리긴 했다. 퇴근 후 남편이 하는 말이 중학생들이 제일 무서운 거 모르냐고 보복당하고 싶지 않으면 앞으로는 절대 중학생들한테 그러지 말라고 나에게 주의를 줬다. 세상 참... 이상하다며 그렇게 나의 오지랖은 끝났다.
아무튼 오지라퍼인 나... 나 말고 타인의 삶에 집중하며 살아야 하는 운명인가 보다 하며 위로해 본다. 어쩌면 이런 나의 성격이 불치병인 이명을 낫게 하는 치료법이 될지도 모르니... 나의 안테나는 너를 향해, 그들을 향해, 세상을 향하고 있다. 손을 부지런히 움직이는데 갑자기 들려온다. 삐--- 손을 움직이면 들리지 않던 소리도 이제는 효과가 사라진 걸까...
이명. 너 참 성가시고 불편하고 짜증 난다. 라디오를 켜야겠다. 오늘 이명 치료는 라디오 볼륨을 높이는 걸로 택했다.
비비작가의 더 많은 글 둘러보기
https://brunch.co.kr/@viviland/31
https://brunch.co.kr/@viviland/26
https://brunch.co.kr/@viviland/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