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다락방 Mar 08. 2023

여수맛집은 택시 기사님에게 물어보세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여수 여행

여수맛집은 택시 기사님에게 물어보세요

     

모처럼 여자들끼리 2박 3일 여수 여행을 떠났다. 잠시나마 육아에서 해방되고 아침 먹으면서 오늘 점심은 또 뭘 해 먹어야 하나 하는 끼니 걱정을 안 해도 되니 엄마에게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여행이었다. 그녀들과의 인연은 아이들 어린이집에서 시작되었다. 어린이집 앞에서 주고받은 눈인사와 “안녕하세요.” 한마디는 서로의 끌림이 되어 12년째 이어지고 있다. 같은 아파트에서 살다 이제는 모두 다른 아파트로 이사를 했지만, 여전히 가족처럼 서로에 대한 마음만은 한결같은 우리 사이. 이런 인연을 만난 것도 살면서 얼마나 큰 복인지 나이를 드니 더 감사하게 느껴진다. 학창 시절 서로 좋아서 죽고 못 살던 단짝 친구도 결혼하고 서로 사느라 바쁘다 보니 명절에나 얼굴 한번 보는 연례행사처럼 되어버렸다. 나이가 드니 가까이에 살면서 언제든 마음 울적할 때 전화 한 통 하면 바로 콜!! 해주는 동네 언니가 최고다. 그런 동네 언니들과 육아 탈출 여행을 시작했다. 비록 2박 3일이었지만 세상 신나고 세상 맛있었던 여수의 향기를 다시 떠올려본다.

    

우리가 사는 지역에서 KTX를 타고 3시간을 달리면 여수엑스포역에 도착한다. 기차역에 내리자마자 호텔 체크인을 하고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 앱으로 택시를 부르려는 순간 택시 한 대가 창문을 드르르 열며 우리를 향해 온다. 어디로 가냐고 묻길래 인터넷으로 미리 찾아 두었던 맛집 이름을 이야기했다. 그쪽으로 호출을 받아 가는 길이니 타라고 했다. 우리는 너무 배가 고팠기에 서둘러 택시에 탑승했다. 기사님께서 무엇을 먹으러 가냐고 묻길래 갈치조림을 먹으러 간다고 하니 본인이 아는 현지 맛집을 소개해준다길래 좋다고 했다. 택시 기사님들이 가는 곳이 진짜 맛집이라는 것은 진리이기에 의심 없이 그곳으로 향했다. 식당 앞에 도착해 내리려고 하는 순간 식당 주인장이 문을 열고 나왔다. 오늘 영업은 끝났다며... 아니 오후 3시밖에 안 됐는데 벌써 영업이 끝났다고요? 역시 맛집이 맞았구나... 하며 아쉬운 마음을 안고 원래 가기로 했던 식당으로 발길을 돌렸다.      


오뚜기 식당. 여수에서 유명한 갈치조림정식과 게장정식을 시켰다. 공깃밥이 나오기 전에 테이블을 가득 채운 반찬으로 젓가락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어쩜 반찬 하나하나가 이리 맛있는지 왜 전라도 하면 음식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지 실감했다. 빈 접시가 점점 늘어날 때쯤 우리들의 밥공기도 깨끗이 비워졌다. 두둑해진 배를 두드리며 소화도 시킬 겸 근처에 있는 시장을 한 바퀴 돌고 호텔에 돌아왔다.


첫날은 무리하지 말자는 언니들의 의견이 있었지만, 호텔 레스토랑에서 8000원만 내면 생맥주를 무한 리필한다는 이벤트를 외면할 수 없었다. 맥주 한 잔 아니 한 모금만 마셔도 얼굴이 우체통으로 변하는 나란 사람이 이날은 한잔하고도 반 잔을 더 마셨다. 취기가 올랐다. 이대로 들어가기 아쉬운 언니들과 나. 결국 택시를 불러 노래방으로 향한다. 12년 만에 처음이었다. 서로의 알 수 없는 음정과 목소리. 하지만 익숙한 노래들. 최신곡을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오래된 노래로 흥이 올랐고 서로 “네가 불러라.” 하며 미루던 마이크가 어느 순간 분주하게 요리조리 움직였다. 흥에 취하다 보니 시간이 다 되었는지도 모르고 다음 노래를 부르려고 하는데 “시간이 종료되었습니다.” 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 서비스를 단 5분도 안 준다고? 관광지라 그런 건가? 아니면 우리가 너무 옛날 사람이라 서비스 없는 이 시대가 낯설고 당황스러웠다. 20대 한참 노래방 다니던 시절 10분 서비스는 기본, “사장님 조금만 더 주세요.” 하면 10분 또 서비스, 어떤 날은 단골이라며 통 크게 30분씩 서비스 주던 노래방 사장님이 새삼 그리운 날이었다.

 

호텔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마지막 1분 남았을 때 부르던 노래를 종료하고 바로 다음 노래 시작했어야 했다며 노래방 서비스에 대한 아쉬움이 이어졌다. 그리고 밤새 이어진 수다에 언제 눈을 감았는지도 모른 체 여수에서의 첫날이 저물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눈을 뜨니 8시 반. 아이들과 동반했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8시쯤 일어나 조식을 먹으러 갔을 테지만 여인 셋이 아닌가? 지난밤 맥주잔을 부여잡고 오밤중까지 이어졌던 수다에 늦잠을 포기할 수 없는 노릇. 하지만 나는 아침형 인간이다. 욕조가 있으니 반신욕을 해야지. 두 언니는 달콤한 늦잠에 푹 빠졌다. 서두를 이유가 없는 아침. 이상하리만치 어색하지만 좋다. 이 느낌. 반신욕을 마치니 두 언니도 이불 밖으로 빼꼼 나온다.

     

오늘의 일정은 어제 택시 기사님이 추천해 주셨던 고향식당에 가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향일암과 오동도에 가기로 했다. 이동 거리가 제법 되는 탓에 렌터카를 빌리려고 했는데 렌트비가 너무 비쌌다. 그래서 이리저리 검색하다 쏘카라는 공유차가 편리하고 저렴하다길래 얼른 앱을 깔고 가입하고 예약까지 완료했다. 비용도 렌터카의 30프로 정도로 저렴했다. 역시 핸드폰 하나면 뭐든 다 되는 세상에 살고 있음을 다시 한번 느꼈다. 핸드폰으로 차를 잠그고 열 수 있고 대여부터 반납까지 사람을 대면할 일이 없었다.


차를 빌려 서둘러 고향식당으로 향했다. 사장님께 어제 왔다가 못 먹고 가서 다시 왔다 하니 더 반갑게 맞아주셨다. 어제 다른 식당에서 갈치조림을 먹었으니 오늘은 갈치구이를 먹어야겠다고 하니 사장님이 “갈치조림이라고 다 똑같은 게 아니다. 우리 집은 생물 갈치로 조림을 한다. 나를 믿고 한번 먹어봐요.” 하시며 갈치조림을 추천하신다. 그래 어제 택시 기사님도 같은 멘트를 했던 걸 보면 진짜 뭔가 달라도 다르겠지 하고 어제에 이어 두 번째 갈치조림을 영접했다. 일단 국물부터 한입, 와우!! 어제는 갈치조림에서 떡볶이 양념 맛이 났는데 오늘은 정말 갈치가 살아있다. 달큼한 무의 식감과 퍼석퍼석한 감자에 깊이 밴 갈치조림 양념이 밥을 부른다. 갈치는 말해 뭐 해. 생물이라 그런지 비린내가 하나도 나지 않았다. 심지어 사장님께서 손수 갈치 뼈를 바르는 방법까지 알려주신다. 메인 메뉴가 너무 맛있어서 같이 나온 반찬에 손이 안 갈 법도 한데 낙지젓에 자꾸 손이 갔다. 결국 우리는 낙지 젓갈을 추가로 구매해서 집에 들고 갔다.


넉살 좋은 사장님은 오늘은 어디로 가냐며 일정을 물어보신다. 향일암과 오동도에 간다고 하니 예술의 섬 장도를 꼭 가보라며 추천하신다. 더불어 저녁에는 무엇을 먹을 건지도 물어보신다. 고기 맛집, 해물탕 맛집 등 다양한 여수 맛집을 추천해 주신다. 사장님이 불러주신 식당을 메모장에 적은 뒤 서둘러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다음 목적지는 장도. 남해안의 물빛을 보고 반해버렸다. 생각보다 더 깨끗하고 아름다운 여수 바다였다. 장도는 인공다리를 통해 섬에 들어갈 수 있다. 물때에 따라 다리가 바닷물에 잠기는 시간이 있으니 미리 물때를 꼭 확인하고 가야 한다. 아니면 신발이 다 젖어버린다. 우리는 바닷물이 다리에 넘실넘실할 무렵 도착해 서둘러 뛰어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신발 안으로 차가운 바닷물이 들어와 양말까지 금세 축축해졌다. 소금물의 찝찝함이 발가락 사이를 넘나들었지만 이쯤이야. 한 시간 반 정도 지나면 다시 통행이 가능하다고 했다. 섬에 들어가 커피도 마시고 사진도 여러 장 찍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섬 밖으로 나오려는데 정말 조금 전까지 바닷물에 잠겨있던 다리가 바다 위로 솟아오른 느낌이다. 자연의 신비를 여기서 또 경험하고 간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도 참 아름다운 곳이 많은데 너무 모르고 살았던 것 같다. 이번 여행을 통해 더 나이 들기 전에 우리나라 구석구석 여행하고픈 욕심이 생겼다.

     

우연히 시작된 택시 기사님의 식당 추천으로 여수 여행이 점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여행으로 변해가고 있다. 고향식당-장도-향일암-해상케이블카-인생 해물탕집. 향일암과 인생 해물탕집 이야기는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비비작가의 일상이 인생이 되는 순간 더 둘러보기


https://brunch.co.kr/@viviland/49


https://brunch.co.kr/@viviland/30

https://brunch.co.kr/@viviland/18

https://brunch.co.kr/@viviland/10                                                                           


매거진의 이전글 삐---이명이 찾아왔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