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고, 돌아가고, 돌아가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고.
181. 사실 이런 게 전부 환상이고 덧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목이 마른 이가 찾는 오아시스가 전부 덧없듯이.
182. 검고 깊은 공동. 들여다보면 모조리 온통이었다. 생각하기도 힘든 계절.
183. 모조리 끝나고 새로 시작할 수 있다고 믿으면 속은 편할 수 있으나 현실은 편안해지지 않겠지. 그런 생각을 했다. 나아지지 않는다는 건
184. 만난 적 없으니 죽은 적도 없다고 합시다. 그러고 나면 편안하고, 편안하니까 계속하게 됩니다. 넘어가게 됩니다.
185. 알고 있어요. 저는 화를 풀고 싶었을 뿐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뭔가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86. 취객의 눈은 한쪽이 멀어 있었고, 그게 무슨 증표처럼 보였다. 자랑처럼 느껴졌다. 비아냥처럼 다가왔다. 난 그 눈이 뒤집어져 있는 그 눈이 짓눌리고 멍든 눈이 사라지기 직전의 눈이 그 눈을 보고 글을 써야겠다고 여기는 내 눈이.
187. 괴물이 된 건 아닐까. 이야기만 만들려는 괴물. 이걸 이야기로 풀어낼 마음만 가득한 괴물. 마음 같은 괴물. 괴물 같은 마음도 마음인가.
188. 난 범죄자에게 더 이상 서사를 부여하고 싶지 않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지금까지 내가 해 왔던 건 뭘까.
189. 뭔가 기점인가. 내가 계단을 오를 때 걷기 버거워 보이는 중년 여성을 그저 지나친 거. 수업시간에 늦으면 안 되니까. 강의시간에 늦으면 안 되니까. 왜 뛸 생각은 하지 않았나. 하기 싫었으니까. 관여하기 싫었으니까. 귀찮았으니까.
190. 귀찮으면 만사 해결이었으니까. 지나쳤고, 지나가면서 또 잊혔으니까. 돌아가고, 돌아가고, 돌아가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고.
191. j형 t니 i이 j는 어떤 감정이 들었을까. 난 지나쳤어야 했나. 이건 그들을 힐난하고 싶지 않다. 비난하고 싶지 않다. 나는. 나는 정말 왜 그런 걸까.
192. 답 없지. 경찰관은 사건 접수를 원하냐고 했고 j 형은 그러지 않는다고 했다. 안다. 이건 사건 접수를 할 만한 일이 아니다. 그는 늙었고.
193. 늙어서 용서되는 일이 있는가. 법. 법만 생각해라. 대한민국은 법치국가. 법치국가로써 기능하는 대한민국. 이건 대한민국에서 용납할 수 없다. 넘지 마라.
194. 인간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없으니까. 법이 있는 거다. 최소한 이 선만큼은 넘지마라. 그래. 선. 선이라는 게 왜 이렇게 굵직할까. 넘어가면 안 되는 선이라는 거 선명한가.
195. 그런 인간이 될 수 있겠지. 이러면 결국 서사가 필요한가. 그 사람은 기초생활수급자인가. 불쌍한 사람인가. 불쌍한 사람은 그래도 될까. 그러면 안 되는데. 안 되는데. 온정주의. 사회는 차갑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