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겠지요, 이렇게 쓰는 줄 18

용돈 받으면서 히피인 척하면 행복하다.

by 김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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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 길가. 잡초를 뽑는 사람을 봤네. 좋은 사람들이라는 박스를 들고 다니면서. 나는 저 사람들이 정말 좋은 사람들인지는 모르지만, 사람이 고작 현상이라면 좋은 일을 하는 동안 좋은 사람이 되는 거 아닐까. 기준도 선의도 모두 제 각기네. 다르네.


257. 숙취가 없는 게 신기했다. 잠든 친구의 얼굴을 본다. 콧구멍이 크구나. 어제 했던 욕이 떠오르고. 목이 말랐다. 환대가 있었으며 환멸도 있었다. 붉은 벽돌을 쌓고 가만히 있었다. 천장. 결정할 수 없는 그 무엇.


258. 개를 찍는 사람과 개를 찍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 배고픈 개. 짜장면을 배달하는 오토바이. 달리는 사람과 달리지 않는 사람.


259. 자주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게을러지고 무능력해지지 말자고 소리치기도 했는데 전부 공허한 느낌으로만 남았다.


260. 용돈 받으면서 히피인 척하면 행복하다. 난 경험도 없고 경험 이외는 더욱 없다.


261. 만나자고 약속했다. 만나자는 약속만 하고 만나지 않았다. 일. 다음에는 다시 일이 생겨났다. 생각에 일 뿐일까 이 세상에는. 언어 같은 건 버려 버리는 게 나을까.


262. 결혼은 가족과 가족의 결합이야. 그럼 가족은 무엇의 결합인데. 내가 물었다.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263. 구름 황달. 이따금 묻곤 했다. 당신을 가능하게 한 건 뭐고, 기능하게 한 건 뭐냐고. 걱정을 하고 걱정을 가능하게 한 건 뭐냐고.


264. 자주 혼자라는 생각을 했다. 그럴수록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만 들었다. 나를 혼자로 몰아두는 게 간단했다.


265. 무엇이나 무엇 이상도 무엇을 슬피 그리는 일이나 그리워하는 일이나 언어를 약속하는 게 버거웠다.


266. 과거 언저리에서 과거를 청산하는 일. 지켜내고 버거워하는 일. 언어 이상을 부수는 일.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며 상대방을 툭툭 치는 일. 배신하는 일과 배반하는 안. 뒤섞고 엉키게 두기.


267. 돈 쓰는 일. 글 쓰는 일. 잘하기는 어렵고 금방 티가 또 안 나. 세상은 자꾸 요렇게 돌아가네.


268. 사랑하거나 사랑받고 싶다면 먼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럴듯한 사람이 아니라.


269. 벌어서 무얼 하리. 모아서 무얼 하고, 우리는 점이 되고. 사라지지는 또 않네. 그렇게 금방.


270. 진짜 놈팡이 짓의 핑계가 되기 전에 어떤 수를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으면 다 끝나는 게 아닐까. 그런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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