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겠지요, 이렇게 쓰는 줄 19

절망하는 사람들 더 절망하라고 글을 쓰는 게 아니다.

by 김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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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 할 법한 일과 하지 못할 일을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땅바닥에 누워서.


272. 침대 바깥으로 몸을 던지고 던진 다음에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건 모르니까. 모르는 일을 또 할 수 있었다.


273. 진지한 척하거나 심각은 또 건넬 수 있으니까. 그래서 위험하다. 전염성이 강해서.


274. 살구를 먹었다. 떫을 줄 알았는데 떫지 않았다. 유자를 먹고 싶어졌다. 굴러가고 있었는데 굳어가는 건 또 아니었다.


275. 이 참에 중개업은 그만두기로 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걱정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


276. 그 애는 여기 없어. 그건 누구나 알았다. 그 애는 돌아오지 않아. 그건 믿고 싶지 않았다.


277. 밤마다 속삭이는 절망. 전망은 훤하고 훨씬 나은 세상. 가리고 싶은 손과 가려지는 손.


278. 절망하는 사람들 더 절망하라고 글을 쓰는 게 아니다. 정말로 그렇지 않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나.


279. 폴로 니트를 사러 갔다. 오만 원을 달라고 했다. 여기는 백화점과 다르다. 누군가가 사용한 물건을 내가 이어 사용한다.


280. 브라이트 고 투 헬. 자주 그랬으면 좋겠다. 쏘 아임 씽잉 투게더.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고.


281. 문제집을 펼친 사람. 버스에서 어떻게든 지속해서 지속해 보려는 사람이 있다.


282. 눈인사를 하면서 멀어지는 사람들. 기사와 기사 다음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283. 나는 나를 드러내지 않기로 한다. 솔직해지지 않기로 한다. 그게 선처럼 보이게, 좋은 변명거리로 비치지 않게 한다. 교조적인 인간으로 변하지 않기로 한다. 지금 그렇지 않은 인간이라고 자조하지 않기로 한다. 냉소를 믿지 않기로 한다. 흔들리면서도 무너지지 않기로 한다.


284. 집중할 수 있는 순간을 많이 만들고 모든 자세에서 열려 있어야 한다. 후덥지근한 밤과 망가지는 낮을 곁에 두고 얼마나 쓸지 경주하는 일.


285. 이 모든 문장은 술 마시고 쓰는 문장이라 내일이면 폐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럴지도 모르니까 그러지 않아야 이 일은 염증에 불과하다. 불안으로만 남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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