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사 Oct 22. 2023

괜찮은 시간

괜찮은 시간 (7)

 2023년 10월 24일. 귀자가 임종실로 병실을 옮겼다.


  죽음이 다가오는 환자는 임종실로 옮겨진다. 임종을 준비하는 병실엔 이귀자, 그녀뿐이다. 서늘한 공기가 병실을 채웠다. 침대와 서랍, 그리고 그녀가 있다. 크기가 조금 큰 관처럼 느껴지는 공간에서 그녀와 리원은 죽음을 실감했다. 


  귀자는 더욱 외로워졌다. 소통은 힘들어졌고 세상과는 더욱 차단되었다. 정말 그녀의 숨이 멎어가고 있었다. 드문드문 정신을 잃었고, 환각은 더 심해졌다. 혈압도 맥박도 불안정하고 귀도 잘 들리지 않았다. 그녀를 향해 리원이 말했다. 임종실의 차가운 공기를 타고 리원의 말이 울렸다. 


  “그거 아세요? 사실은 사람마다 다 이상하게 털이 많이 나는 곳이 있대요. 다들 그걸 숨기고 사는 거래요.”


  리원은 귀자에게 자신의 등을 보이며 말을 이어갔다.


  “저는 날개뼈에 털이 나요. 목욕탕에 가기 전에 혼자서 뽑으려다가 담이 걸린 적도 있었다니까요.”


  리원은 손가락을 한껏 구부리며 날개뼈에 팔을 뻗으려 했던 동작을 선보였고, 리원의 우스꽝스러운 행동에 귀자는 웃음이 났다. 귀자의 입에 단 호흡기는 그녀의 웃음을 따라 입김이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문양을 찍어냈다. 둘은 서로를 마주 보며 한참 웃었다.


  리원의 거짓말과 농담은 매일 이어졌다. 그러나 이제 그 말은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토막으로 간간이 들려올 뿐이었다. 그럼에도 리원의 말은 이어졌다. 


  리원에게 바라는 것이 생겼다. 들리는 토막이 모두 좋은 말이길 바랐다. 그러나 그 바람이 얼마나 이루어질지 몰라 리원은 문장을 모두 좋은 말로 채우기로 했다. 어떤 말이 좋은 말일까. 그녀의 머릿속에 좋은 단어와 좋은 문장은 없었다. 


  그때, 오래전에 사두었던 책들이 떠올랐다. 리원은 집에 가자마자 손이 안 닿는 책꽂이 맨 위 칸을 차지하고 있던 에세이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귀자에게 말해 주기 위해서 열심히 머릿속에 담았다. 


  책을 들고 읽어주면 가장 좋겠지만 근무 시간엔 바쁘고 정신이 없다 보니 그럴 여유가 없었다. 늘 병실을 돌며 여러 환자를 돌봐야 했다. 게다가 병원 인수 문제로 어수선해진 분위기 때문에 퇴사한 간호사도 있어서 리원의 업무와 근무는 더 많아졌다. 


  리원에게는 오히려 반가운 일이었다. 출근하는 날이 많아지면서 귀자와 더 오래 함께 있을 수 있었다. 리원은 연차와 휴일을 미루고 출근을 자청했다.


  2023년 10월 27일. 리원의 머릿속은 귀자로 가득했다. 


  어떻게 해야 그녀가 편해질 수 있을까. 귀자를 생각하느라 자신의 과거를 떠올릴 새가 없었다. 과거를 붙잡고 자신을 혐오할 시간도, 자신이 미워지고 멀어질 공간도 이제는 그녀의 마음속에 없었다. 어느덧 리원의 생각은 그녀를 과거로 끌고 가지 않았다. 


  “아이고, 고마워라.”


  귀자는 리원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했다. 귀가 온전히 들릴 때부터, 거의 들리지 않는 순간까지 늘 고맙다고 말했다. 리원의 말이 들리지 않아도 그녀의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귀자는 알 수 있었다. 틈틈이 건네는 리원의 눈길과 손길은 귀자의 하루를 따스하게 채웠다.


  “제가 더 감사해요.”


  리원이 더 고마웠다. 최대치의 표현을 써도 부족한 마음이었다.


  리원이 귀자의 꺼끌꺼끌하고 거친 손을 잡았다. 거친 손은 미끄럼 방지를 위해 일부러 우둘투둘하게 만들어 놓은 안전장치 같았다. 표면이 거칠어서 그 손을 한 번 잡으면 놓치지 않을 것 같았다. 그 손을 맞잡고 있으면 어디로든 미끄러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귀자도 바랐다. 리원의 손을 잡고 함께 살아가길 바랐다. 


  2023년 10월 31일. 귀자의 체인 스토크스 호흡이 시작됐다.


  깊고 빠른 호흡과 무호흡이 번갈아 가면서 한 사람의 죽음을 알렸다. 보호자에게 연락을 마친 리원은 귀자를 향해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괜찮아요. 정말 괜찮아요.”


  그녀는 한 번도 뱉어본 적 없는 단어를 말하듯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마치 갓 태어난 아기가 첫 호흡을 위해 강한 힘으로 숨을 들이쉬듯 떨려왔다. 


  괜찮다. 이제 조금 있으면 괜찮아질 거다. 더 이상 아프지 않을 거다. 아팠던 날도 아프지 않았던 날도 당신은 괜찮은 사람이었다. 리원의 말은 이어졌다. 


  “이귀자 님이 계셔서 제 세상이 밝아졌어요. 감사합니다.”


  리원의 목소리가 임종실을 울렸다. 그 울림은 리원의 목, 식도를 타고 심장을 울렸다. 이내 심장이 더욱 빠르게 뛰면서 울림이 온몸으로 퍼졌다. 심장에서 피가 흘러가는 속도로 빠르게 퍼지는 울림은 눈물샘을 건드렸다. 눈에서 물줄기가 흘렀다. 


  턱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땅으로 떨어졌다. 낙하하는 눈물에 선반 위의 알약이, 의자 위의 연고가 볼록하게 확대되어 비쳤다. 이내 떨어진 눈물로 임종실 바닥이 진동했다. 임종실의 진동에 바람이 일렁였다. 바람결을 타고 공기가 순환했다. 


  리원이 귀자의 상태를 보며 내쉬던 한숨, 귀자를 향해 이야기하며 흘러나온 숨, 귀자와 리원이 함께 웃으며 내뱉은 숨. 둘 사이를 오가던 숨이, 저 멀리 흩어져 있던 숨이 일렁이는 바람을 타고 다시 병실로 찾아왔다. 


  귀자의 숨이 멎어가는 순간, 바람결에 찾아온 그들의 숨이 귀자에게 스며들었다. 그리고 귀자는 마지막 숨을 내뱉었다. 


  뱉어낸 숨이 따스했다. 따스한 숨의 온기가 쌀쌀해진 가을밤을 감싸 안았다.

이전 12화 괜찮은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