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난 여름 방학 (6)
그들은 오르막길에 줄지어 있는 집과 가게 사이를 빠르게 걸었다. 처음 만들어진 건물 사이로 뒤에 생긴 건물들이 억지로 끼어서 만들어진 것 같은 골목은 유독 어두컴컴했다. 전등이 들어오는 간판도 몇 개 없었지만, 그마저도 영업이 끝나면 모든 불을 다 껐다. 영업 중일 때도 전기세가 아깝다고 사용하는 곳만 전등을 켰다.
술집도 있고 밤에 장사를 시작하는 곳도 있었지만 모두 어둡고 음침했다. 그런 곳이 뿜는 빛은 어디에 꽁꽁 싸여 빛을 간신히 쥐어짜 내는 듯한 뿌연 빛을 내고 있었다. 비탈길을 내려오고 일방통행 도로를 지나 달동네를 벗어났다. 큰길이 나왔다.
큰길은 건너 신도시로 향했다. 신도시의 밝은 빛이 점차 그들과 가까워졌다. 도로에 가지런히 자리 잡은 건물들은 각기 다른 색을 뿜으며 빛나고 있었다. 달동네는 점점 그들의 뒷모습에서 멀어졌다.
이제 달동네는 그들의 그림자가 되었다. 하늘은 빛바랜 검정 잉크가 뿜어내는 푸른빛으로 바뀌고 있었다.
사거리를 건너 며칠 밤 묶을 곳을 알아보았다. 그들이 머물 수 있는 곳은 적었다. 그날은 성인이 되기 딱 하루 전이었다. 잘 수 있는 곳은 찜질방뿐이었다.
찜질방에서 그녀는 곤히 잠들었다. 벗겨진 살갗은 물에 닿아 짓물렀다. 진물 냄새가 그녀에겐 피 냄새보다 역하지 않았다. 손 가죽이 다 벗겨져 욱신거리는 통증이 내내 도사리고 있었지만, 그녀는 그 진통이 오히려 자신을 토닥여 주는 손길같이 느껴졌다.
시골로 도망 왔다. 그들은 성인이 되었고, 가족이 되었다. 모든 것이 변했던 그들의 겨울과 봄은 적응하느라 애쓰는 시간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 속에서 그녀 감각은 계속 재생되었다. 피비린내를 맡으면 그날이 떠올랐다. 그러나 평생 피 냄새를 피할 수는 없었다. 특히나 여자는 더욱 그랬다. 매달 놓치지도 않고 생리는 시작됐다. 윤슬의 몸에서 나오는 피는 그녀를 계속해서 그날로 데리고 갔다. 잊지 말라고 말했다. 몸에서 나온 그 비릿한 기억은 자신도 결국 아빠와 같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잠들지 못하는 밤에는 산책하러 나갔다. 몸이라도 움직여야 할 것 같았다. 그녀가 지금 그와 함께 시골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몸으로 계속 느껴야 했다.
윤슬은 집에서 그의 농장까지 걸었다. 시골길은 산책하기 좋았다. 풀 내음과 고요한 밤공기, 하늘에 뜬 별, 건물 하나 없이 탁 트인 공간. 시골의 풍경이 마음에 들었다.
그의 농장에 갔을 때, 갑작스러운 움직임이 느껴져서 그녀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몸을 숙이고 좁은 보폭으로 걸어가다가 그가 두고 간 소쿠리와 가위를 발견했다. 혹시 몰라서 가위를 쥐고, 수상한 소리를 피해 움직였다. 그러다가 깜짝 놀라 가위를 떨어트렸을 때, 지나가던 뉴트리아가 가위에 찍혔다. 발버둥 치며 달려들려는 짐승의 모습에 당황한 그녀는 가위를 더 깊숙하게 찔러 넣었다. 완전히 죽였다.
다른 야생 동물들도 말썽이지만 뉴트리아가 특히 고민이라서 사람들이 농장에 약을 뿌린다고 했었다.
산책 후 그녀는 편히 잠들었다. 뉴트리아를 죽일 때의 느낌은 분명 끔찍했던 사건을 떠올리게 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그 느낌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다음 날도 자다가 깨지 않고 푹 잠에 들었다.
그녀는 이유를 알 수 없어서 혼란스러웠다. 그렇게 지우고픈 감각이 사실은 그리웠던 것일까. 그 감각이 지금의 평온을 만들어줬다고 생각했던 걸까. 혹은 그 감각을 비슷한 감각으로 계속 덮어버리려는 것이었을까.
그 후로 그녀는 한별이 잠든 사이 종종 사냥을 나갔다. 사냥하고 나면 불안이 사그라드는 것 같았다. 나갔다 돌아오는 밤은 편히 잠들었지만, 다음날엔 자신이 무서워졌다.
여름이 시작되던 날, 한별이 말했다.
“뉴트리아 사냥할래? 우리 농장에 뉴트리아 엄청 많잖아. 그거 잡으면 포상금 준대. 마리당 2만 원.”
신나는 걸 발견했을 때의 눈빛이었다. 문신을 하자고 말했을 때처럼, 달동네는 불꽃놀이 하기 좋은 길이라고 들뜨던 때처럼.
“어, 갑자기 왜?”
당황해서 얼어붙은 윤슬에게 한별은 생글생글 웃으며 칭얼거렸다.
“농장에 진짜 많다니까. 그게 다 돈인 줄 알았냐고. 밤에 산책하면서 놀기도 하고. 제발, 응?”
그날부터 그들의 밤 사냥은 시작되었다. 농장에는 점점 약품 냄새가 나지 않았다. 야생 동물이 많이 사라졌다고 했다. 흙에선 싱그러운 꽃의 향기와 과일의 향이 올라오고 있었다. 이제 사람들의 코에도 향긋함이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얼마간의 기간이 지나 그들의 밤 사냥은 마을 사람들에게 여러 번 목격되었다.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돌아오던 박 씨 할아버지는 어린것들이 돈독이 올랐다고 생각했고, 갱년기 때문에 자다가 갑자기 열이 올라서 마을 한 바퀴를 돌던 윤 씨 아줌마는 늦은 밤에 데이트하는 그들의 젊은 날이 부러웠다. 손주가 하도 잠을 설쳐서 아이를 업고 동네를 걸어 다니던 최 씨 아저씨는 그들을 보고도 별생각이 없었다. 한별과 함께 일하는 김 씨 아줌마는 그들이 농장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는 걸 봤다고 말하면 뭐라도 성의 표시를 해야 할 것 같아서 모른 척 넘어갔다.
*
밤 사냥을 마친 윤슬과 한별은 짐을 챙겨 집으로 향했다.
“어, 나무다!”
윤슬이 농장 근처에 있는 커다란 나무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녀는 그 나무를 발견할 때마다 좋아했다.
“저 나무가 그렇게 좋아?”
한별은 어이없다는 듯 웃어넘겼다. 어릴 적부터 윤슬은 갑작스럽게 좋아지는 게 많았다. 그가 물어볼 때마다 이유는 말해주지 않았다. 그냥 어느 날 갑자기 좋아졌다고만 했다.
“몰라, 그냥 좋아.”
그녀는 나무가 좋은 이유를 생각했다. 얼마 전에 그 나무 앞에서 그가 말했다.
내가 말한 적이 있어서 그런 거야. 농장에 야생 동물이 말썽이라고. 그래서 그런 거야. 사방이 반려동물들이었으면, 너는 널 찔렀으면 찔렀지, 다른 동물을 죽이진 못할 애야. 오래 봐 왔잖아. 내가 널 알아. 널 못 믿는 밤엔 날 믿어.
그들의 걸음마다 울퉁불퉁했던 땅은 평탄하게 다져졌다. 그들의 걸음이 끝나는 곳마다 곳곳에서 꽃향기가 진하게 피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