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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현 Nov 28. 2020

사춘기의 종식

BANGKOK



삶의 의미를 끊임없이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태어나긴 했는 데 왜 태어난 것일까. 정말 나는 살고 있는 것일까. 어차피 태어난 줄도 모르게 먼지처럼 사라질 삶인데 이토록 안쓰럽게까지 버둥거리며 왜 살아가려는 걸까.  회의적이고 염세적이라 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생각과 고민들을 가득 안은 채 제법 오랜 시간을 보냈다. 




















중학교 이 학년 때쯤 아마 첫 사춘기가 왔다. 당시 밀어 올리는 슬라이더였던 내 휴대폰을 엄마는 맨손으로 비틀어서 두 동강을 내셨다. 또 내 책을 몽땅 들고 오셔서는 세로로 길게 책을 두 동강 내버리셨다. 불같은 성질의 엄마와 사춘기 중2 소녀가 만나면 벌어지는 흔한 일이다. 그때의 문제는 부모님과 나의 관계, 즉 사회관계에 대한 혼란이었다. 인간의 첫 사회관계는 가족이라고 하는 데 아마도 그것을 내 나름대로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 같다. 정리가 되니 거짓말처럼 방황을 끝내고 학업으로 돌아갔다. 그때 내 사춘기가 끝난 줄 알았다. 보통 잘 만들어진 시리즈물 같은 경우 시즌1보다 시즌2가 스토리적으로도 탄탄하며, 볼 것이 다채롭다. 나의 사춘기 시즌2가 그랬다. 


긴 시간이었다. 굳이 시점을 정하자면, 20살에 첫 가출을 했고(우습게도 부모님은 내 가출에 관심이 없으셨다.) 28의 여름까지 라고 정하겠다. 사춘기 시즌1에 미처 하지 못했던 나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나는 누구이며, 태어난 이유가 없어 보이는 데 왜 태어났으며, 왜 내가 상상한 만큼 현실에서는 멋있지 못하며, 그렇다면 어째서 이산화탄소나 만들며 꿋꿋이 살고 있는가, 같은 생각을 꾸준히 열심히 끊임없이 정성을 다해했다. 이런 생각들의 끝은 '정답을 찾는다'가 아니라 깊은 어둠으로 빠지는 것이다. 

 이 생각들은 사실 답을 찾을 수가 없다. 나쁜 부산물만 만들어 내는 답 없는 사이클이다. 큰 업적을 남겼다면 의미 있는 삶이고, 그저 누군가의 딸, 엄마로 살다 갔다면 의미 없는 존재일까. 절대 그렇게 말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대부분 악의 고리는 한번 들어오면 빠져나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돌아가던 톱니에 적당히 맞는 사이즈로 끼어 계속해서 돌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오랫동안 낮고 축축하고 음산한 곳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3개월 정도의 계획 없는 배낭여행이 진흙 속에 있는 나를 끄집어내 준 어떤 기폭제가 된 것은 분명하다. 기대 없이 시작했던 여행으로 마음의 깊은 상처들에 하나씩 딱지가 생기기 시작했다. 세상이 너무 넓고 아름다운 것들이 많아서 그런 고민들을 할 여유가 없다고 느껴졌다. 어차피 동전의 양면처럼 세상의 모든 것은 양면이 있고, 이 세상도 양면이 있는 것이다. 그저 걸어 나와 해가 비치는 곳에 서 있으면 되는 것이었다. 

여행으로 가장 얻은 것이라 하면 마음의 근육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단단해진 마음은 외부의 공격에 맞서 싸우고 나를 지켜준다. 올해는 1월부터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 11월까지 계획된 것처럼 펼쳐졌는데 근력이 없었다면 아마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에게 여행이란 그런 존재인 것이다. 답이 없는 질문을 멈추게 했고, 밝은 것을 볼 수 있게 했다. 내가 태어난 거 누가 모르면 어때. 그냥 나 좋은 대로 살면 되는 거지. 


내가 견뎌낼 수 있는 만큼의 고통만 버티어 내고 벅차면 돌아 나가면 그만 인 것.

도망은 또 다른 시작인 것. 

어깨에 긴장 풀고, 근력 채워서 살아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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