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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tlionheart Jan 25. 2024

나 다된 거니?

Unsplash 사진


지난번 냉동치료의 아픔이 무서워서 3주 만에 내 소중한 티눈을 치료하러 병원에 갔다. 접수대에서 다른 여성 의사분으로 지정해 달라고 말해 놓고, 치료실에 들어가 할 말을 속으로 정리했다.


지지난 번에 처음 치료를 해주신 선생님이 들어오셨길래, 3주 전의 과도한 액화 질소 분사로 인해 통증과 붓기로 잠을 못 자고, 소염 진통제를 두 번이나 찾아 먹고 겨우 통증이 가라앉았다고 하면서, 치료 기간이 오래 걸려도 좋으니 강하게 하지 말아 달라고 정중히 부탁을 드렸다.


이 선생님의 치료 특징은 액화 질소를 분사통으로 분사하지 않고, 면봉을 액화질소에 담가 적신 후에 면봉을 티눈 부위에 살살 문지르는 방법을 쓰고 있다. 강한 압력이 가해지지 않으니 -196도의 액화질소로 인한 통증이 훨씬 적다. 그리고 부가적으로 죽은 피부를 탈각시키기 위한 연고를 처방해 주셨다.


오늘의 문제는 여기부터였다. 치료비를 수납하려고 하는데 지갑을 차에 두고 온 게 생각이 났다. 여기서 일차로 당황을 좀 했다. 계좌이체가 되냐고 물었더니 된다고 해서, 별생각 없이 카카오 페이로 계좌이체를 하면서 결제창을 수납 직원한테 보여주는데 이체 오류가 났다. 여기서 이차로 많이 당황을 했다. 다시 자리를 잡고 앉아서 은행 앱에 얼굴을 들이밀며 페이스 인증을 하고, 병원 계좌로 이체를 하는데, 나는 이미 당황한 상태여서 그런지 직원 두 명이 무슨 일이냐고 쑤군대는 게 꼭 나를 보고 그러는 것 같아서, 신경이 뾰족뾰족 날카로워졌다. 결제 완료창을 직원에게 보여주고, 처방전을 받아 들고는 그냥 냅다 주차장으로 향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계속 ‘나 왜 이런 하찮은 것도 제대로 못하게 됐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혼자 설움이 폭발했다. 그래서 집에 도착하자마지 찔끔찔끔 나오는 눈물을 양손으로 훔치며 울었다.

“잉? 겨우 이런 거 가지고 울었다고?”


그렇다. 늙는 게 서러웠다. 눈도 잘 안 보여서 바늘귀에 실도 잘 못 넣고, 오타는 기본이고, 시력이 떨어지니 귀도 잘 안 들려서 사오정 같은 말만 해대고, 집중력도 같이 떨어지고, 손 끝의 감각도 무뎌져서 단춧구멍에 단추를 꿰어 넣는 섬세한 작업도 시간이 더디 걸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웬수 같기만 한 남편한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라는 내 한 마디에 왜 우냐고 묻는다. 이차저차 해서 나 바보 같다고 하니, 자기는 더 한 일도 많다고 하면서, 오늘 나를 위해 에피소드들을 방출하겠다고 한다. 짧은 통화를 끊고 나니, 조금은 위로가 되어 진정을 할 수가 있었다.


서방이 없는 것보다는 속 썩어도 서방이 있는 게 낫다고 항상 나를 훈육하시는 광주 이모님 말씀이 생각이 났다. 이모님이 칠십 대 후반이셔서 항상 나는 “네, 네” 하면서도 속으로는 ‘이런 게 세대 차이구나’ 했었는데. 오늘 나를 위로해 준 건 중국집 왕서방도 아닌 같이 늙어가는 양서방이었다.


두서없이 제목과 동떨어진 이 끝맺음은 또 어찌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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