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계적인 교육을 받고 싶어서 인스타그램 팔로잉을 하는 분 중에 그래도 안면이 있는 분께 선생님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나의 구구절절한 장문의 디엠에 그분이 추천해 주신 분은 A 바리스타였다.
피드를 살펴보니 프로필에 다양한 커피 분야에서 챔피언 타이틀을 갖고 있는 분이셨다. 사진을 보니 콧수염을 기르고 있었고, 팔에는 타투가 많이 있는 듯 보였다. 디엠으로 내 소개를 하고 수업신청을 하고 싶다고 메시지를 보내자, 외모와는 다른 느낌의 담백하고 진지한 답문자가 왔다. 백 프로 맞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글이 그 사람을 잘 드러낸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는데, 짧은 답글을 보고도 좋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저런 수업을 A 선생님께 들었던 나의 기억은 지금 뒤죽박죽이지만, 2020년 12월 초중반에서 시작해서 다음 해 1월에 첫 수업을 마친 것은 정확하게 기억이 난다. 그때 나를 포함한 교육생 네 명의 얼굴도 또렷이 기억이 난다.
첫날 운전도 서툴고 연희동까지 가는 길이 초행길이라, 나는 수업에 늦을까 봐 조바심을 내며 조심스럽게 정체구간을 벗어나고 있었다.
선생님의 매장과 교육장이 있는 연희로 ***번지에 도착했을 때, 그렇잖아도 좁은 주차 공간에 어떤 차가 어정쩡하게 정차를 해놓고 있었다. 급한 마음에 선생님께 전화를 했다가 연결이 안 되니 바로 보이스톡을 눌러서, 상황이 이러하여 주차가 어려운데 좀 내려와서 봐주실 수 있냐고 물었다. 그 앞의 차는 건물주의 차로 바로 나갈 것이니 조금만 기다렸다가 주차를 하라는 답변을 받았다. 조마조마하게 차주인을 기다리고 있을 때, 차주인과 거의 동시에 선생님이 나타났다. 내 차를 뒤로 빼서 앞차가 나갈 수 있게 공간을 만들어 준 후, 각도를 맞추기 어려운 공간에 차를 대야만 했다. 처음 보는 선생님의 수신호에 맞춰 온 힘을 다해서 핸들을 돌렸다가 풀었다가를 몇 번 반복해서 겨우 주차를 할 수가 있었다. 나는 당황하여 상기된 얼굴로 차에서 내렸는데, 핸드폰을 차에 두고 내려서 다시 차에 올라탔다가 핸드폰을 가지고 내렸다. 아차! 이번에는 차 열쇠를 두고 내린 게 생각이 나서 다시 차에 탔다가 차키를 가지고 내렸다. 아! 그런데 이제까지 시동을 안 끄고 차에 오르락내리락했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온몸에 땀이 삐질삐질 나면서 얼굴이 더욱 빨개졌다. 마지막으로 차에 다시 들어가 시동을 끄고 나온 나는 차 열쇠와 핸드폰을 양손에 꼭 쥐고서, 겸연쩍은 미소도 짓지 못한 채 황급하게 계단을 올라가 교육장으로 향했다. 그때 선생님의 입가에 조금이라도 웃음기가 퍼져있었다면, 나는 그 자리에서 울어버렸을지도 모를 정도로 창피하고 민망했었다.
브루잉 수업은 한 번에 세 시간씩 한 달에 네 번인 과정이었고, 과정이 끝나면 실기와 필기시험을 통해 SCA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었다.
교육으로 잔뼈가 굵었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게 속사포처럼 방출하는 방대한 지식과 경험에 놀라워하면서, 나는 다시 중고등학생이 된 것처럼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초집중을 하게 되어 금세 집에 갈 시간이 되곤 했다.
속도감 있게 풀어내는 설명과 간간이 섞여 나오는 유머가 수려한 외모에 더해져 더없이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한겨울에 꽉 막힌 상습 정체구역을 통과해 한 시간 넘게 운전을 하고 가도 피곤하지가 않을 정도로 나는 에너지가 넘치게 되었다.
나는 어둡고 긴 터널을 조금씩 벗어나고 있었다.
수업료는 결코 싸지 않았다. 그래서 브루잉 한 과목만 듣고 그만 들으려고 했었다. 마지막 시간에 선생님이 다음 과정에서 수업할 물의 종류에 따른 커피추출, 다양한 추출 변수 조절에 따른 커피추출의 변화 등등을 설명하는데, 눈이 번쩍 뜨이면서 '저것도 듣고 싶다!'는 강한 욕망이 생겼다. 그렇게 연속해서 선생님의 수업을 듣게 되었다.
그 이후로도 몇 달을 띄엄띄엄 건너뛰면서 센서리 수업과 에스프레쏘 추출, 로스팅 수업까지 듣게 되면서 2년이라는 시간이 금방 흘러버리게 되었다.
작년에 영어강사라는 직업을 주 5일 수행하면서, 기억에서 점차 사라져 가는 커피에 대한 그동안의 나의 시간과 노력을 떠올리며, 이렇게는 그냥 흐지부지 끝나게 놔둘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급한 마음에 여름방학 직전에 센서리 고급반 수업을 신청해서 듣게 되었다. 다시 한번 몰입의 순간을 기대하면서 조심스럽게 교육장 문을 열자, 반가운 선생님 옆으로 종종 커피 행사 때 마주쳤던 C가 와 있었다. C는 나와 동갑으로 화학을 전공했고, 나처럼 방과후 강사로 학교에서 과학강사를 하고 있었다. 지난번에 C를 마주쳤을 때 A선생님의 수업을 적극 추천했었는데, 이번에 수업을 같이 듣게 된 것이었다.
센서리 수업은 커핑을 통해 맛과 향에 대한 감각을 훈련하는 과정이다. 작년에는 초중급반 과정을 수료하고 자격증을 취득했었고, 올해는 고급반을 신청했던 것이다.
어쨌거나 의도치 않게 나는 자격증 콜렉터가 되어 있었다.
마지막 수업날이었던가.. 여러 가지 원두로 커핑을 하면서 수강생 네 명이서 돌아가면서 선생님과 함께 다양한 표현들을 말하고 있었다. 나는 플레이버 휠(flavor wheel)을 머릿속에 떠올려 보아도 뿌연 비닐이 위에 덮여있는 것처럼, 선뜻 정확한 표현을 할 수가 없었다. 나와 비교해서 여기저기 커핑 하러 바쁘게 돌아다니는 C는 참 쉽게도 커피맛에 대한 표현을 줄줄 쏟아내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선생님이 상기된 얼굴로 눈에 힘을 주고, 꾹꾹 한마디 한마디 눌러 야단을 치셨다.
"**씨! 다른 친구들은 커핑 다니면서 실력이 늘고 있는데, **씨는 작년하고 똑같다!"라고.
갑자기 가슴 한가운데가 저려오면서 나는 쏟아지려는 눈물을 숨을 참으며 목구멍으로 넘기고 있었다. 이 수업을 시작하면서부터 나 자신이 바로 느끼고 있었던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어떤 상황 속에서 커피를 배우게 되었는지를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기에 더 가슴이 메어왔다.
십여 분 남은 시간 동안 울컥거림은 계속되었고, 선생님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겨우 운전을 하고 집 앞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선생님께 문자를 드렸다.
선생님께
수업 들으면서 저도 느끼고 있던 점인데..
고심 끝에 하신 말씀이라고 생각됩니다.
약이 되는 말씀 감사합니다.
오늘 남은 하루도 즐겁게 보내시길.
가르치고 배우는데 나이의 많고 적음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렇게 정곡을 찔려 혼쭐이 나고 나니 정신이 퍼뜩 들기도 했고, 나를 정말 아껴주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