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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Mar 18. 2022

당신은 지금 시낭송이 필요하다 11회

자그레브에서의 인터뷰 I

11


-선생님! 죄송한데 오늘 저녁에 언론사 인터뷰가 급히 잡혔습니다. 자그레브로 복귀해 주십시오.

노인은 슬로베니아에 도착한 지 반나절도 되지 않은 시점에 옛 성이 보이는 섬으로 들어가는 배를 타기 위해 표를 끊고 차례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노인은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거절할까도 했으나 그날 발표 때 참석자들의 다양한 반응에 강한 여운이 남아 구체적인 질문을 받고 싶기도 했다.

짧게 승낙 메시지를 남기고 섬으로 가는 일정을 포기하고 자그레브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인터뷰는 방송국이 아닌 시내 카페에서 진행되었다.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부터 기자과 카메라가 노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노인이 약속된 시간에 도착하자 카페 중앙에 마련된 간이 무대 위에는 인터뷰어와 통역사로 보이는 두 사람이 가운데 빈 의자를 두고 마주 앉아 있었다.  

-드라고 미 예 (Drago mi je!)

노인은 두 사람을 보자마자 차례로 악수를 하며 인사를 했다. 적어도 인사말 정도는 초면에 그 나라말로 하는 것이 예의라 여겨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입안에서 여러 번 굴리며 연습해 온 탓에 표정을 자연스럽게 하며 말할 수 있었다. 영어로 Nice meet to you!라고 말할 때보다 발음이 수월했고 끝말이 예로 끝나서 자연스럽게 웃는 표정으로 연결되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이미 인사말이 만나는 이에 대한 반가움과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을 품고 있는 언어 같았다. 뜻밖의 선물을 받은 듯 두 사람은 환하게 웃으며 반겼고 먼 아시아에서 온 원로 시낭송가의 잡은 손을 한참을 흔들었다. 자리에 앉으며 인터뷰어는 한국말로 인사말을 준비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길게 통역을 통해 전했다. 

-갑작스러운 저희의 인터뷰 요청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세계 시낭송 포럼은 유독 한국에서 온 한 명의 시낭송가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발제문을 통해 대한민국의 시낭송문화를 흥미롭게 소개하면서 보다 체계적인 교육과 함께 그 가치와 방향을 제시하셨는데요. 현재 한국의 시낭송은 어떻게 향유되고 있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시를 짓고 읊고 주고받기를 즐기는 민족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심지어 겨루기도 즐기는데요, 작년 한 해동안 108개의 공식적인 전국 규모의 시낭송대회는 이를 반증합니다. 알려지지 않은 작은 규모의 대회까지 합산하면 300여 개가 넘으니, 그야말로 일 년 내내 매일같이 대회가 한반도 어느 곳에선가 개최되고 있다는 거죠.  


인터뷰어는 그 숫자와 빈도에 탄성을 지르며 300개가 아닌 30개가 아니냐고 통역에게 여러 차례 확인을 요구했다. 시가 무슨 스포츠도 아닌데 대회를 하는 것도 신기했지만 무엇으로 평가를 할까도 궁금해진 인터뷰어는 간단한 메모를 준비한 큐시트 여백에 적으며 눈은 노인에게서 떼지 않았다.

-우리는 고향을 소중하게 여기고 그것에 대한 결속이 대단합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사는 이곳에서 나온 시인들을 기리며 여는 대회들이 각 지자체마다 각자의 지역을 알리고 집중하게 하는 수단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이는 어쩌면 다소 부정적인 부분도 없지 않으나 긍정적인 부분이 더 크다고 봅니다. 단순한 관광으로 유치할 때보다 지역 홍보의 효과가 큰데요, 한 달 전부터 참가자들은 출신 시인들의 시들을 미리 암송하며 그의 일생을 공부하게 됩니다. 그 과정은 낭송대회 참가자들로 하여금 깊은 울림과 이해의 순간으로 박제하고 한동안 그 지역과 그 시인들을 기억하게 합니다. 이는 사진과 기념품으로만 기억하는 여행이 아닌 감성과 스토리로 추억하는 여행으로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되죠.

-시낭송이 하나의 행위, 한 번의 공연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하나의 장소와 낭송하는 사람과의 연결을 가능케 한다는 것이 놀랍군요. 더 나아가 그것을 지켜보는 많은 이들과의 연결까지 기대할 수 있으니 시낭송대회는 집단적 소통 잔치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집단적 소통이라는 말이 참 와닿네요. 참 좋은 표현이에요. 혹시 인터뷰하시는 분이 시인이신가요? 하하. 


노인은 크로아티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문화를 흥미롭게 들어주는 인터뷰어가 고마워서 조금 주제에서 벗어나는 이야기로 이어가고 싶은 장난기가 일었다. 

-혹시 암송하는 시가 있나요?

불쑥 물어보는 노인의 물음에 인터뷰어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두 팔을 흔드는 호들갑 같은 제스처를 하고는 꼬고 있던 다리를 바꿨다. 그 사이 노인은 벌어진 옷깃 사이를 바투 댄 후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조용히 낭송하기 시작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노인의 낭송은 지나치게 격정적이거나 슬프지 않았으나 인터뷰어는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티슈를 한 움큼 쥐고는 눈과 코를 번갈아 가져 가느라 무대에서 대사를 잃어버린 배우처럼 한참을 말을 잇지 못하다 심호흡 후 어렵게 말을 꺼냈다.  


-당신 나라의 시인가요?

-김소월의 <진달래꽃>이라는 시입니다.

-이게 무슨 일인지... 죄송합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연신 혼잣말로 인터뷰어는 어쩔 줄을 몰라해서 누군가 이 순간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면 무슨 지인의 부고를 전해 들은 줄로 보였을 것이다. 인터뷰 관계자가 무대에 올라와 인터뷰어와 무언가 말을 주고받더니 난감해하면서도 재미있어하는 표정을 지으며 잠깐 쉬어 가자고 통역과 노인을 번갈아가며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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