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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Mar 19. 2022

당신은 지금 시낭송이 필요하다 12회

소년, 노인을 다시 만나다

12



노인과 소년이 다시 만난 건 한 달 하고 보름이 지난 때였다. 소년은 벤치에 앉아 있는 노인을 보자 순간 새가 날아와 길 위에 사뿐히 착륙했다. 오후 네시임에도 칠월의 태양은 여전히 식지 않았다. 새의 걸음은 달궈진 아스팔트 위에서 가벼웠다. 노인은 챙이 큰 모자를 쓰고 있어 소년이 반갑게 인사를 건넬 때 첫 번째 표정을 놓치고 말았다. 소년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리라 예상해 주저하는 동안 노인은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에서 생수병을 꺼내는 바람에 그 제안마저 그만두고 노인 옆에 앉았다. 소년은 노인의 옆모습을 처음 보았다.

뚜렷한 콧날과 턱선은 더욱 나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누구나 정면보다 측면이 젊어 보일까 하는 순간 노인은 고개를 돌렸다. 노인은 그간의 일정과 안부를 짧게 들려주고는 나이가 드니 시차 적응이 어렵다고 했다. 소년은 당분간 공연을 쉬고 있으며 스스로 정체된 것 같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선생님! 저는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왜 혼란스럽고 막막할까요? 무엇을 좋아하는지 몰라 고민하던 때와 다른 힘겨움이 들어요. 제 길이 맞는 건지도 이제는 잘 모르겠습니다.


인사할 때와 사뭇 다른 표정이 되어 소년은 숨겨둔 주머니 속 구슬을 꺼내듯 노인에게 고민을 건넸다.

노인은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그 사이 또 한 마리 새가 노인의 발 앞에 날아와 앉았다. 아까 노닐다 날아갔던 그 새인지도 모른다. 다시 새가 떠나자 노인은 소년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돌아가고  다음 주 수요일에 보세.

어떤 조언이라도 기대했던 소년은 어리둥절했으나 노인의 제안에 금세 그날의 선약을 머릿속에서 체크했다. 있으나 없으나 수용할 테지만 말이다.

시간과 장소는 추후 연락하겠다는 노인의  첨언은 결코 언제 밥 한번 먹자는 헛약속은 아님을 증명한다. 더 묻고 싶은 것이 많았으나 어제 장거리 여행을 하고 돌아온 노인을 오래 붙잡아두는 건 실례라고 소년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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