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숲오 eSOOPo Sep 24. 2022

사물과 마음 사이 I

신발과 승부

신발은 승부에 속박한


출발선 앞에 선 이를 보라.

옷깃을 여미듯 신발끈을 묶고 있다.

전쟁터에 나가는 옛날 장수의 갑옷 같다.

무엇과 싸워야 하는지를 아는 듯

어디로 던져야 하는지를 아는 듯

과거는 끈질기게 흔적들을 남긴다.

고대의 창기병은 프리랜스로

중세의 갑옷은 신발로 남아 있다.

싸움이 바뀌면 신발을 바꾸는 법.

신발만 보아도 어떤 승부를 하려는지 알 수 있다.

신발만 신어도 어떤 승부욕이 끓어오른다.

상대의 신발을 신어 보라는 말은

이해보다는 승부하기를 포기하라로 해석된다.

신체의 한 부위를 완전히 에워싸는 것은

장갑과 신발이 있는데 단단하게 싸는 신발은

온몸을 지탱하는 탓에 지면과 육체 사이의 마찰을 견디는 혹은 밀어내는 완충도 가능해야 한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삶과의 승부는 신발의 호흡이다. 거칠수록 이겨낸다.

신발은 움직일 때 소리를 지른다.

때로는 고함을 지르며

때로는 파도소리를 내며

때로는 박수소리를 낸다.

신발끝에 집중하면 침묵할 수 있다.

신발 소리는 세상의 신발 수만큼 보다

세상의 바닥 수x신발신은 자의 마음 가짓수에 수렴한다.

신발은 발자국을 남긴다.

그것은 승부를 마친 인증의 표식이다.

옛날보다 발자국이 줄어든 이유는

승부의 기질이 사라진 탓이다.

조금만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면

승부사의 신발들은 큰 족적을 남기는 걸 알 수 있다.

집으로 돌아와 가장 먼저 신발을 벗는 것도

승부를 마친 이의 의식과도 같다.

남자들이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는 것도 신발을 들어 올려 상대에게 승부의 위협을 가하는 것이고,

여자들이 버선발로 누군가를 맞이하러 마당으로 나오는 것도 승부에 대한 무장해제인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