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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Mar 13. 2023

어쩌다, 시낭송 064

가끔 고백이 필요해

I    안이 부실해졌다


세월이 흐를수록 밖으로부터 안으로의 수용이 버거워진다.

육체에 있어서 음식이 그러하고

관계에 있어서 타자가 그러하다.

아무거나 먹어도 탈이 없던 소화기관은 조금만 식탐을 부려도 기초대사량이 전과 달라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먹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걸어야 탈이 적다.

식사 후 그만큼의 걷는 시간을 확보할 수 없는 경우는 차라리 금식을 선택한다.

메뉴가 뷔페라도 되는 날에는 짚신을 울러매고 국토대장전에 임해야 하는 각오가 필요하다.

관계도 예전 같지 않다.

사람 좋아하는 내가 점차 낯선 이와의 새로운 관계 맺음에 어려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가치관이 다른 것을 힘겨워하고 속물적인 생각들을 혐오하다 보니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해 놓치기도 한다.

내가 세상보다 완고하고 고집스러워진 탓이다.

다시 말랑해지지 않으면 더 외로워질 것이다.

시선과 태도가 전부다.

음식이든 타자이든 내 안으로 들어와서 말썽이 일어난다면 순전히 나의 필터가 고장났기 때문이다.

수시로 나를 살피고 갈고닦지 않으면 타자의 티만 대들보로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지금의 작은 소화불량 징후들은 어쩌면 반가운 예방주사일 수도 있겠다.




II    고백에 관한 시 한 편 소개합니다   


어느 대나무의 고백                                                                                   


                                                    복효근 


늘 푸르다는 것 하나로 

내게서 대쪽 같은 

선비의 풍모를 읽고 가지만 

내 몸 가득 칸칸이 

들어찬 어둠 속에 

터질 듯한 공허와 회의를 아는가 


고백컨대 

나는 

참새 한 마리의 무게로도 휘청댄다 

흰 눈 속에서도 

하늘 찌르는 기개를 운운하지만 


바람이라도 거세게 불라치면 

허리뼈가 뻐개지도록 휜다 

흔들린다 


제 때에 이냥 베어져서 

난세의 죽창이 되어 피 흘리거나 

태평성대 향기로운 대피리가 되는, 

정수리 깨치고 

서늘하게 울려 퍼지는 장군죽비 


하다못해 세상의 종아리를 후려치는 

회초리의 꿈마저 

꾸지 않는 것은 아니나 


흉흉하게 들려오는 

세상의 바람소리에 

어둠 속에서 먼저 떨었던 것이다 


아아, 고백하건대 

그놈의 꿈들 때문에 서글픈 나는 

생의 맨 끄트머리에나 있다고 하는 

그 꽃을 위하여 

시들지도 못하고 


휘청, 흔들리며, 떨며 

다만, 

하늘 우러러 견디고 서 있는 것이다 




III    예전에 Go Back Jump이라는 게임이 있었지? 고백이 전부라는 말이야.


https://youtube.com/watch?v=zpcQ1wzi_j8&feature=shares

고백성사_김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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