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기에 대한 단상
어떤 행사에 걸맞은 목소리를 결정하는 것은 민감한 작업이다.
말을 할 때에도 옷을 입을 때와 마찬가지로 TPO가 필요하다.
Time, Place, Occasion
시간, 장소, 상황을 고민한다는 것은 발화가 고착되어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유연하게 적용하고 대처하는 특별한 감성이 패션에서와 같이 스피치에서도 요구된다.
말에는 좀 더 구체적으로 사전에 고민할 것이 더 있다.
대상이 누구인가?
목적은 무엇인가?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말이라 하더라도 대상의 반응과 표정, 분위기는 존재한다.
대상을 고려하지 않는 말하기는 적절하지 않은 음식을 초대한 게스트에게 먹이는 것과 다름 아니다.
또한 목적은 방향성과 취지를 이른다.
늘 목적이 뚜렷한 말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상적인 말하기는 상대와의 교감이 전제된다.
운전사만이 아닌 상대도 어디로 가는지를 아는 여행이 즐겁기 때문이다.
자칫 좋은 목소리가 말하기의 으뜸 조건이라고 판단하기 쉽다.
사실 그대의 목소리는 듣기 좋든 아니든 이 세상에 그대가 유일하다.
희귀하다는 것만큼 가치를 가지는 것이 있을까.
하나밖에 없기에 누구를 따라 하려는 욕망은 애초부터 부질없다.
나의 특별함을 조금만 의식해서 드러내 보일 수 있다면 독보적이게 된다.
자신이 가진 가장 좋은 목소리를 가지고 성심성의껏 발화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가 궁극으로 듣는 것은 목소리의 좋은 울림보다 화자의 진정성과 의도가 절대적이다.
목소리는 외모나 인상 같아서 처음에는 호감을 던져주지만 내용이 부실한 목소리는 청자에게 쉬 피로감과 진부함을 남긴다.
그리고 하나의 목소리는 고민 없는 목소리로 인식되어 단벌신사 같은 인상을 풍긴다.
대상에 따라서
상황에 따라서
의도에 따라서
공간에 따라서
적어도 공적인 말하기 자리에서는 이를 반영했을 때 말의 모양새가 달라진다.
둘 다 하면 할 수 있으니 쉬울 수도 있으나
둘 다 제대로 하자면 막막하다.
글은 잘 알아 듣기 쉽게 쓰기 힘들어서 어렵고
말은 하고 나면 주워담기 어려워서 힘들다.
글은 신체중에서 손이 담당하지만 온 몸이 거들어야 가능하고
말은 입이 담당하지만 온 마음이 발벗고 나서야 가능하다.
말을 공부하면서 글의 지혜를 배우고
글을 매일 쓰면서 말의 습성을 돌아보게 된다.
말과 글은 서로 각자의 방식대로 돕는다.
청산행_이기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