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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엔 골프가 대세이지만 한때 내겐 테니스가 최고의 운동이었다.
성장기에 가장 키 크는 데 도움을 주는 운동으로 농구를 제치고 1위 자리에 테니스가 있다.
워낙 양반 스포츠다 보니 상대가 득점을 못해도 빵점이라고 하지 않고 러브 Love라고 달콤하게 불러준다.
앞서나가기라도 할라치면 그저 '제가 조금 유리한 상태에 있어요'라고 겸손하게 말한다.
그리고 점수 체계도 쩨쩨하지 않고 넉넉하게 부여한다.
15... 30... 40...
서브를 할 때의 포즈는 얼마나 우아하고 아름다운가.
창공을 향해 가볍게 태양을 숭배하듯 공을 사뿐히 던진 후 살짝 굽힌 무릎과 뒤로 젖힌 허리의 연장선에서 라켓은 포물선을 그리며 공이 멈추었다 내려오는 순간에 테니스는 시작된다.
퐉!
91.4cm의 네트를 낮게 넘어가 상대 코트의 대각선 작은 박스 안에 테니스공이 안착하는 그 맛은 홀인원보다 짜릿하다.
포핸드로 랠리를 거듭하다 상대의 허점을 찌르고 네트 앞으로 달려가 하이 백핸드 발리가 성공해 득점으로 연결되는 순간에는 첫 키스의 달콤함에 비견된다.
한여름의 작렬하는 태양 아래에서도 덥지 않았고 눈 쌓인 엄동설한에도 춥지 않았다.
매주 한 두 차례 코트에서 땀을 흘리고 나면 허벅지가 단단해지고 팔뚝이 묵직해지고 모든 잡념이 사라졌다.
토너먼트에서 우승이라도 하는 날에는 세상을 다 가진 기분에 지치는 줄도 몰랐다.
그랬었는데
그랬었는데
3년의 공백이 테니스로부터 영영 멀어지게 했다.
네 개의 다리에 테니스공을 신고 있는 의자에 앉아 그새 녹아버린 허벅지의 근육들을 바라보며 테니스를 그리워하고 있다.
어제부터 테니스코트로 나가기 위한 프로젝트로 근육 재생 운동을 혼자서 하고 있다.
운동을 안 하다 하는 것이라 무리하지 않으려 가볍게 짜 보았다.
사이클 10분
스커트 15개 3세트
레그 레이즈 10개 3세트
프런트 레이즈 10개 3세트
덤벨 플라이 10개 3세트
플랭크 최대한으로 3세트
운동하는 이들은 '장난하냐?'라고 하겠지만 나는 무척 힘들었다.
조금씩 횟수와 강도를 늘려갈 예정이다.
지금은 습관화가 우선이고 꾸준히 하는 게 목표다.
고교시절 학교 코트에서 테니스를 치는 날에는 테니스장 주변으로 여학생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 소리 질렀다.
이웃 고등학교 테니스클럽으로부터 도전장을 받는 날에는 응원단까지 데리고 가서 박살내고 돌아오곤 했다.
다시 코트에서 한 손으로는 테니스공을 바닥에 튕기며 한 손으로는 라켓을 돌리며 코트를 누빌 그날을 위해 오늘도 잃어버린 근육들을 깨워 단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