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이숲오 eSOOPo
Oct 21. 2023
길치가 아닌데 길을 잘못 들었다.
걸어서 오분 거리를 헤매니 삼십 분을 돌아갔다.
약도는 건물과 길의 위치를 표기하고 있으나 주로 길 찾는 용도에 쓰인다.
이상하지 않은가.
약도를 볼 때마다 의아했다.
길 찾는 이는 땅을 보거나 위를 올려다보며 걷는데 이를 돕는 약도는 하늘에서 바라본 시선, 즉 새의 시선 Bird's Eye View이라는 점이다.
그러니 약도를 볼 때만큼은 인간보다 새의 존재가 되어 생각해야 한다.
새의 마음을 읽어내려 새대가리 아니! 새가슴이 되어본다.
인간보다 높이 날아서 볼 뿐 아니라 지능도 새에 가깝게 조율을 하고 봐야 하나 혼란스럽다.
혹시 그대가 약도를 보고도 길을 헤맨다면 새보다 지능이 월등해서이니 좌절하지 마시라.
가끔씩 이 덕분에 내게로 찾아와 줄 손님이나 벗에게 나의 거처를 알려줄 지도를 그릴 때마다 새가 되어본다.
이 때는 자유롭게 비행하는 새가 된다.
한 번도 날아서 본 적도 없으면서 약도를 그릴 때만은 난다.
난다.
난다.
훨훨
날아야 그릴 수 있다.
날아야 그릴 수 있다니!
길은 걷지 않고 날아야 길을 장악할 수 있다.
이따금 겨드랑이가 가려울 때는 날개가 돋는 것이다.
길을 날개 없이 나서는 무모한 이는 없다.
오늘 길을 놓친 것은 눈이 아닌 날개를 챙기지 않았음을 돌아오는 길에 깨달았다.
덧말♡
오늘 본 뮤지컬은 시간여행을 한다.
나는 공연 내내 공간을 뒤적이다 마음을 뒤적이다 나왔다.
노래는 익숙했고 노래 아닌 것들은 어색했다.
커튼을 내리자 배우와 포옹했고 원작자와 포옹했고 기획자와 입 맞추었다.
그것으로 족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