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숲오 eSOOPo Oct 29. 2023

피로의 시절

0504

지치기 좋은 시절을 보내고 있다.

몸에 주기적으로 투여되는 약물들도 그러하고 정신에 간헐적으로 투입되는 약속들도 그렇다.

능력 너머의 수고와 사고는 영육을 피로케 한다.

자잘한 욕심들이 우울을 낳고 기르고 번식한다.

모두 내려놓으라고 안팎으로 아우성친다.

난 아랑곳하지 않고 삶이라는 썰매를 타고 얼음을 지치듯 지친 몸짓을 멈추지 못한다.

조금만 나아가자
조금만 버텨보자

팽팽해진 일상의 장력은 성공의 그것과 나란하지 않다.

하나를 거머쥐려면 하나를 놓아야 하는 이치를 자주 망각하고 크게 잃어버린 추억을 돌이켜본다.

아등바등해도 제로섬게임으로 종결되는 시합을 경쟁자 없이 열심히 하고 있다.

지친다.

지친 이후는 지고 다친다.

일요일은 지친 부위에 빨간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덕지덕지 붙이는 날이다.

그리고 다짐하듯 입술을 동그랗게 합장한 후 분다.

호오오오


자기 위로는 입김이 안성맞춤이다.

나의 피로에 입김을 뜨겁게 불어넣고 주먹의 밑바닥을 찍고는 아기발바닥의 발가락 끝을 찍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금세 입김이 사라지며 이내 지침을 잊을 수 있다.

어서 피로의 게이지를 낮추고 기대의 수치를 채워두어야 내일을 가질 수 있다.

아!

밤이 넘치기 전에 숟가락으로 번뇌를 퍼내고 퍼내자.

가만 보니 피로를 잘못 다룬 탓에 피로가 오해된 것도 한몫하고 있다.

피로회복제는 피로로 다시 돌아가자는 것으로 들린다.

피로해소기피제이거나 피로제거제 이어야 했다.

마치 안전사고 같은 어설픈 낱말 같다.

안전한 사고로 아무도 오독하지 않으나 신호등에 없는 파란불 같은 건 어쩔 수 없다.

이런!

삐딱해진 건 지친 상태의 증상 중 하나다.

더 시비를 키우기 전에 어서 잠자리로 들어가야겠다.


피로의 시절이 끝나는 날을 꿈꾸며 ㅡㅡ


매거진의 이전글 여행의 묘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