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숲오 eSOOPo Nov 02. 2023

폐허의 기쁨

0508

나락으로 추락할 때 걱정하지 말라고 마티유 카쇼비츠는 그의 영화 <증오>에서 말한 바 있다.

그가 들려주는 에피소드는 몰락에 대한 태도를 새삼 더듬게 한다.


한 사내가 백 층높이의 마천루에서 떨어지고 있다.

백 층... 구십 구 층... 구십 팔 층... 구십 칠 층...

그는 한 층씩 떨어질 때마다 이렇게 외치고 있다.

so far so good!

지금까지 다 괜찮아!

SO FAR SO GOOD!

아직까지는 잘 되고 있어!

지금 떨어진다는 사실은 그리 중요치 않아!

진정 중요한 것은 어떻게 착륙하냐는 거지.


팬데믹의 긴 터널을 지나고 연습실과 사무실은 폐허가 되어갔다.

운이 좋게도 이를 딱하게 본 키다리 부인의 도움을 받아 재기할 기회를 얻었다.

이때 리뉴얼 오픈행사를 하며 슬로건을 이렇게 달았다.

기쁨의 폐허
무너짐의 즐거움


Joy of Ruin!

바닥을 치고 나니 튀어 오를 수 있었다.

폐허가 되니 다시 지어 올릴 수 있었다.

몰락이 마냥 부정적이지 않게 느껴졌다.


어쩌면 하루를 사는 것은 무너지는 일이 아닐까.

해변가에서 모래성을 짓는 아이를 보라.

금세 밀려오는 파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즐겁게 쌓는다.

파도에 이내 휩쓸려 모래성이 무너질 때 아이는 환호를 지르고 손뼉을 친다.

몰락이 유쾌한 일은 아니나 그것이 가져다주는 이치와 이면의 지혜를 놓치는 것은 더 치명적인 몰락이 아닐런지.


https://youtu.be/e6AFTa7ZRT0?si=rzQ3vNkw3tBvXghb



https://brunch.co.kr/@voice4u/32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