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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 땅을 정성껏 밟는 일이다.
머리가 시원해 하늘을 올려다보니 낮의 창공보다 더 깊이를 알 수 없는 청명함이 놀랍다.
어두운데 맑다
자잘한 별들로 밝기까지 하다.
깜깜한 시간에 길을 잃지 않을 수가 있다니 거듭 신기하다.
깊어지는 어둠이 아니라 옅어지는 시간이다.
동트는 기운은 가만히 바라만 보아도 나에게 전해온다.
아직은 두어 시간 새벽을 만끽할 수 있다.
운 좋게 새벽이 나를 부른 날에는 내 육체는 결코 무겁지 않다.
머리는 보다 투명해지고 몸은 한없이 가벼워진다.
새벽이 그토록 나를 길로 내몰고 글로 내모는 까닭도 여기에 있는가 보다.
모두가 잠든 사이에 눈을 뜨고 있는 것은 모두가 눈 뜨고 있을 때 나만이 잠들 수 있는 것보다 짜릿하다.
특권은 새벽을 소유하는 자만이 경험할 수 있다.
내가 켜는 등만큼만 공간은 드러나고 빛이 손잡아주지 않은 공간들은 사라지는 절묘함.
그 모서리에 걸쳐져 있는 나.
아직 밟지 않은 눈길 같은 새벽을 애써 빛으로 훼손하지 않으려 등의 밝기를 최대한 죽인다.
어둠도 이렇게 촘촘해지니 청명해질 수 있구나.
짙은 어둠은 사나운 도시마저도 순하게 굴복시킨다.
새벽에 마시는 에스프레소는 각성제가 아니라 진정제가 된다.
새벽의 또다른 매력은 그다지 할 수 있는 것들이 제약적이라는 점이다.
이것이 역설적으로 독특한 자유로움을 선사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주는 자유란 무수하다.
태양 아래보다 쏟아지는 영감의 밀도가 높아 글쓰기에서 자유의 극치를 체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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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이 없었다면 인류는 얼마나 교만하고 경솔했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마저 부리게 된다.
새벽이 고마워서
새벽이 불러줘서
새벽이 친근해서
다시 불러보는 새벽의 찬가는 까맣고 청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