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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Dec 02. 2023

어둠을 겪다

0538

특별할 것 없는 순간이 각별하다.


이불을 걷고 바닥을 딛고 새소리를 듣고


일상스러운 느낌이 기적에 근접하다.


어둠에 둘러싸이고 따스함에 감싸 안기고


미동도 하지 않았던 감각이 피어오른다.


서늘했던 감정들이 누그러지고


서슬 퍼런 미움들이 사그라드는


새벽의 침묵은 천금보다 월등하다.


하루 중 가장 명징해지는 시간이다.


전쟁을 마치고 돌아온 장수가 정중에 몸을 담그듯


한밤을 보내고 돌아온 나는 어둠에 몸을 담근다.


어둠은 필터다.


자꾸 나를 촘촘히 걸러낸다.


미세한 양자에 가까울 때까지 걸러낸다.


걸러내는 것은 길러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성장은 순도를 높이는 훈련이다.


탁해지는 것은 성장이 아니다.


닳고 닳아지는 것은 성장의 반대편이다.


다 알아도 순수해지는 것이 성숙이다.


덜 알면서 탁해지는 것은 미숙함이다.


어둠에서의 하나의 빛은 자각이다.


머무름을 경고하는 회초리다.


영원해서는 나아갈 수 없다.


순간에서만이 진정 걸음이 된다.


그래서 현재는 과거와 미래보다 짧게 설계되었다.


그건 다행스러운 힌트가 된다.


식물이 꿈틀거리는 찰나와 같다.


격렬한 미동을 놓쳐서는 안 된다.


거기에 어둠의 비밀이 있다.


함부로 빛을 밝히지 않기로 한다.


자연스럽게 어둠이 걷히는 때에 비로소 알게 된다.


어둠은 차가운 용광로였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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