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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Jan 26. 2024

소월 시 예찬

0593

김소월 시 <먼 후일> 원본


시를 가르치고 있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면 시낭송가들을 대상으로 시낭송을 가르치고 있다.

(사실, 가르친다는 표현이 거칠고 부담스럽다. 그저 함께 느끼고 감동하는 편에 가깝다.)

이번 달에는 김소월의 시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요즘 시낭송대회에서 아무도 선택하지 않는 소월의 시를 왜 해야 하는가를 전하느라 바쁘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셰익스피어 작품을 연기하면 모든 연기가 가능하듯이 소월을 낭송할 수 있으면 모든 시를 낭송할 수 있다.

소월의 시에는 인간 본연의 마음인 사랑하는 마음, 그리워하는 마음들을 듬뿍 담겨있다.

또한, 우리의 전통적 민요에 바탕을 둔 민요적 가락인 7.5조(3 음보)가 시인의 숨결로 녹아 있다.

구어체로 쓴 시는 편안함 가운데 간절한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 여운을 오래 남긴다.


지난 시간엔 <산유화>를 가지고 낭송해 보았다.

이 시에 등장하는 '저만치'라는 시어를 어떻게 해석하냐에 따라서 세 가지의 낭송이 가능하다.

자연과 인간 사이에 놓인 가닿을 수 없는 '숙명적 거리'로 해석한다면(김동리 해석) 객관적 시선으로 표현할 수 있다.

능동적인 의지가 없는 자연과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의 괴로움과 동경의 간극으로 해석한다면(김춘수 해석) 새의 시선으로 낭송할 수 있다.

꽃과 동일시하는 경우에는 겸양과 현재의 상태를 지키려 하는 수세로 해석되어 인간의 근원적 고독(서정주 해석)을 표현할 수 있다.

그저 애매한 감정을 사용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

막상 시낭송가들이 해보자 그들의 습관들은 어느새 사라지고 새로운 음성이 소월의 시에 묻어 나왔다.


시낭송은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누구도 대신 감각할 수 없기에 수동적 수용이 아닌 시에 대한 능동적 해석이 가능해야 한다.

그러니 말할 것이 없을 때에는 낭송하지 않아야 마땅하다.

대책 없이 내뱉는 순간 공허한 흰소리가 되어 허공에 던져진다.


아련해지는 낭송의 여운은 듣는 이보다 낭송하는 자의 가슴에 먼저 아로새겨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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