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지금 시낭송이 필요하다 65회

할 때 힘들면 일이고 안 할 때 힘들면 사랑일 거야

by 이숲오 eSOO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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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낭송가의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노인은 소년을 보자마자 인사말을 할 때의 표정으로 그것과 어울리지 않는 무게의 질문을 던졌다. '시낭송가는 무엇인가'의 정의도 아니고, '시낭송가가 낭송 말고 다른 어떤 일을 했던가' 하는 여러 파생된 질문들이 원래의 그것을 비집고 들어와 소년의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노인이 질문을 허투루 한 적이 없는 걸 아는 소년이기에 생각을 질문 주위에서 더듬어보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소년은 일처럼 낭송을 해 본 적은 없으나 어젯밤 일기장에 털어놓은 독백이 잔뜩 움츠리고 뛰어오른 개구리처럼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선생님! 가끔씩 이 일이 내 일인가 싶을 때가 있는데 어떻게 그 기준을 판단하면 좋을까요?

마취주사를 맞은 수술 환자가 시간이 지나 약효가 떨어져 주기적으로 통증이 밀려오듯이 그런 마음이 들기도 했으나 심각한 고민거리는 아니었다.

-회사에서 신입직원과 사장 중에서 어느 누가 휴가기간이 길어질수록 마음이 무거울까를 상상해보게. 내 일의 책임이 클수록 일을 할 때보다 일을 안 하고 있을 때 힘이 더 들지 않겠는가. 자네가 시낭송을 할 때가 힘든지 안 할 때가 더 힘든지를 가만히 생각해보면 분명해질 것이네.

소년은 원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뒤를 돌아보며 자신 없어했던 순간들이 노인의 말에 부끄러워졌다. 이내 그 기준도 확고해졌다. 시낭송대회를 준비하며 낭송 공연을 하지 못한 공백이 힘든 이유를 알 것 같다. 할 때에는 몸이 힘들었지만 안 할 때에는 맘이 힘들었던 것이다.


노인의 질문이 엉뚱하게 흘러 다른 길로 들어서게 되었으나 그 길의 풍경도 나쁘지 않았다. 길을 잃어버리니 진짜 여행이 시작되었다. 소년은 노인 앞에서 대회에서 낭송할 시를 읊었다. 공연 이후로 의식해서 한 건 처음이다. 다수보다 단 한 명 앞에서 하는 것이 더 긴장되었다. 생각이 많아지면서 강약과 완급이 거칠었고 어미가 흔들렸다.

-낭송은 연설도 아니고 강연도 아니지. 무엇을 설명하려고 애써도 안되고 무엇을 가르치려고 해서도 안된다네. 자네가 그렇다는 아닌 건 알고 있네. 낭송자가 청자와 교감하려는 의지와 소통의 리듬을 놓치게 되면 균형이 깨지면서 위압감을 주며 그런 부작용이 드러나게 되는 걸세.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할 때가 균형을 깰 때보다 더 많은 집중력과 에너지가 필요했다. 노인은 기교와 기술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년은 추나요법으로 어긋난 뼈를 정리한 듯 찌뿌둥했던 감성과 열정이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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