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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Mar 31. 2024

니가 봄이니

0658

날씨가 고운 날에는 무리를 하게 된다.


지나치게 많이 걷거나

지나치게 말을 하거나

지나치게 차를 마신다


하늘만 좋은 게 아니라 산도 보기 좋은 날이면 그것과 가장 가까운 곳까지 다가가 본다.


이말산을 바라보다가 내친김에 북한산이 정면으로 보이는 곳까지 옮겨간다.


통창이 있는 볕 좋은 자리에 앉아 차를 연거푸 두 잔을 홀짝인다.


비로소 봄이구나.


맨투맨의 긴팔을 걷어올리며 봄을 실감한다.


따뜻한 기운이 카페의 온기인지 지구의 온기인지 분간이 가지 않지만 산천의 만발한 꽃들은 말한다.


봄은 몸이 아닌 맘의 온도로
감지되는 계절이야




그렇구나.

봄은 그럴듯한 화법을 지녔구나.

그러니까 다른 계절에 없는 날씨도 가지겠지.


자주 설득되지 않는 완고함이 봄에게는 여지없이 무너지는 걸 보니 봄은 요물이다.


봄을 가지지 못한 나라 사람들은 얼마나 불쌍한지 모르겠다.


봄이 생산하는 감정이 얼마나 다채로운지 안다면 그들은 나라를 팔아서라도 봄을 수입해야 할 것이다.


완연한 봄이다.


나의 단추구멍 같은 눈이 커진다.


더 보고 싶어 깜빡임도 참아본다.


눈이 빨개지도록 봄은 푸릇해지고

눈이 어리둥절하도록 봄은 현란하다.


봄은 계절 중에서 유일하게 진화하는 계절이 아닐까.


작년보다 교태스럽고

작년보다 상징적이다


올해는 봄을 매일 조금씩 봉지에 담아 킵해야지.


신선도를 위해 냉동고 한편을 비워두었다.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다길래 봄의 멸종을 몰래 대비하는 유일한 방법을 고작 생각해 내어 실천하고자 한다.


아차차!

걱정이다.


봄의 해동은 어찌 해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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