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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Apr 05. 2024

글쓰기 비밀 I

0663

글을 쓰면서 사물은 사물 그대로의 모습을 상실하게 된다.


그것은 무릇 사물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어서 사상, 이론, 감정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글은 흐르는 물을 흐르는 그대로를 가지지 못한다.


현상을 관조하듯이 묘사할 뿐 물을 촉각 하도록 하려면 읽는 이의 상상에 기대야 한다.


'그러하다'가 '그것 자체'는 아니어서


모든 글쓰기는 쓰는 순간 '아닌 어떤 것'이 되어 버린다.


빛처럼 허전하고

불처럼 허무해서

글을 쓰는 것은 순간을 만끽하는 놀이에 불과하다.


글을 쓰기 전의 기대가 쓰고 나서 그것에 미치지 못하는 것도 이러한 원리에 입각한다.


글을 쓰는 것이 때로는 숭고하고 때로는 하찮은 이유도 그것의 '정처 없음'에 있다.


어쩌면 신앙 같은 행위.


있다고 믿어야 글은 비로소 써지기 시작한다.


펜을 멈추는 순간 글쓰기는 사라진다.


행위하는 동안에만 존재하기에 혹자에게는 신을 닮았다고 살짝 우길 수 있다.


어쩌면 벚꽃 같은 행위.


있었지만 찰나라서 써야 쓴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쓰는 동안에만 찬란하기에 혹자에게는 꽃을 닮았다고 느긋하게 버틸 수 있다.


그래서 글쓰기는 보이는 것만을 쫓는 한가한 이들이 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들을 쫓는 분주한 이들이 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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