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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May 10. 2024

자발적 좌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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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 다다르려 할 때의 허무함을 안다.


기나긴 기다림이나 고루한 고단함이 더해진 상황이라면 그것의 에너지는 극한으로 치솟는다.


달려온 관성만큼 내려가려는 반발력이 만만찮다.


조약돌 같던 의지도 진흙처럼 물컹거리며 제 모양을 수시로 뭉개버린다.


강력한 저항은 어느새 내부에서 자라고 있어서 저항인 줄도 모르고 키운다.


희망만큼 좌절도 기대의 부작용이다.


미리 당겨 끌어안는 실망의 옆모습이 측은하다.


눈물의 대부분은 우리가 선택한 것뿐이라는 어느 시인의 시가 문득  떠오른다.


왜 서둘러 좌절을 맞이하려 하는 것인가.



순탄해지는 순간마다 애써 좌절을 이야기하련다.


이는 초 치는 것이 아니라 균형을 위해서다.


천사들의 시기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평탄한 적이 협소한 인생이지만 불행하지 않는 기간이 순조로운 때의 다름 아닐 터이니 이때를 두려워하고 경계하기 위하여 좌절을 앞세우리라.


좌절하지 말라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기운이 꺾이는 것은 내 의지와 무관한 경우가 부지기수이기에 이미 당한 후에는 다루기가 어렵다.


대체로 능동적 행위에는 자발적 해결의 키를 거머쥘 확률이 높다.


독을 스스로 가진 자의 다른 손에는 해독제가 있다.


꺾이기 전에 내가 꺾는 것은 메커니즘이 다르다.


좌절이 무용에서 유용함으로 전환될 수 있는 시점이 된다.


부정성은 자발적으로 다룰 때 그 본질의 깊이가 달라진다.


애매하게 부패한 두부는 곰팡이 피어 먹지 못하지만 이를 소금물에 넣어 더 삭히면 고소한 취두부가 된다.


실패가 바닥을 만나자 다른 성질의 긍정성으로 탈바꿈하는 것은 흔히 신세계에서 일어난다.


기운이 기울어질 경우에는 좌절당하지 말고 자발적으로 좌절하는 것이 차라리 유리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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