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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May 28. 2024

머리 깎은 날

0716

갈등


혼돈


무엇이 옳은지 갈피를 못 잡은 날


배려가 상처가 되고


뜨거운 햇살이 다리 아래 윤슬로 바뀌고


어차피 다시 돌아올 제자리


미루다 미루다 긴 머리를 자른다


2층 미용실에서 내려다보니 소녀가 지나간다


서울을 벗어나고 싶다


다음에 또 머리가 눈을 찌르면 기차표를 끊어야지


서비스로 나온 메밀차 위로 머리카락이 떨어진다


디자이너가 머리를 흔들며 머리를 자른다


꼼꼼하게

싹둑싹둑

스르르르

째깍째깍


가위에서 시계 초침소리가 들린다


악기소리 같기도 하고

모래 밟는 소리 같기도 하고

조용한 밤에 듣던 파도소리같기도 하다


뒤통수가 예쁘네요


기껏 내가 못 보는 부분을 칭찬한다

확인할 수 없어서 서로 안심이다


얼굴이 더 예쁘고 싶어요


거울에 비친 나의 반대 모습이 낯설고 슬프다


수십 년을 본 얼굴인데 이렇게 생겼구나


매번 어색하고 수줍다


거울을 메밀차 티백으로 깨고 싶다


아까 그 소녀의 정면이 보인다


갈 때는 혼자였는데 지금은 여럿이다


소녀의 머리를 잘라주고 싶다


파도소리 나는 가위질로 물결모양의 머리를 만들어주면서 풍선껌을 불어야지


얼굴이 뒤통수보다 예쁘구나


무엇이 괜찮은지 갈피를 못 잡는 날


보도블록 사이에 핀 노란 꽃 앞에 주저앉아 훌쩍훌쩍 눈물을 훔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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