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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한 방법은 가르칠 때만큼은 흥미가 일지 않는다.
내가 재미있어야 한다는 이기주의 교수법에 준한다.
처음의 풍경이 제각각이고 구면의 인상이 익숙함을 견제한다.
마치 야바위 원판에 빼곡하게 여행지 장소를 적고 무작위로 화살을 쏘아 박힌 우연의 지명으로 떠나는 여행 같기도 하다.
무엇이든 결정되면 의미는 지어 올리기 나름이다.
처음 만난 낯선 이의 이름을 듣고 추정하는 이름의 의미들... 거슬러가서 그려보는 태곳적 인연들...
그리 불리었으므로 그리 살아지리라
존재에 집중하면 쓰던 것을 재활용하기 민망해진다.
음식도
언어도
표정도
한 사람이 변신술을 펼칠 수 없으니 방법을 달리 구해보는 수밖에 없다.
방법은 요령이라는 울타리 밖에서 풀을 뜯어먹고 산다.
그러니 요령의 번잡스러운 울타리를 넘어 시선과 태도의 앞치마를 새로이 둘러야 한다.
거추장스러워서 팽개치고 보기에 튀어서 구석에 밀쳐두는 시선과 태도들...
사실 강의는 계획으로 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강의는 들길보다는 새들의 하늘길이나 물고기들의 바닷길에 더 가까워서 자유로운 움직임으로 목적지에 도달함을 목적으로 한다. 적어도 나의 강의에서는 그렇다.
그러므로 강의 때에는 이정표들이 외부에 있지 않고 서로의 가슴에 자리한다는 것을 놓치지 않는다.
지금... 강의 계획서가 아닌 강의를 헤엄치며 노닐 강의 유영서를 작성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