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숲오 eSOOPo Jul 02. 2024

바보 같은 비

0751

날씨 중에서 비만큼 감성을 자극하는 자연현상이 있을까.


빗소리는 빗자루로 마당 쓰는 소리처럼 귀를 간지럽히고 저만치 우수로 떠민다.


처연한 노래를 흥얼거리게 하고

지나간 추억을 오물거리게 하고

허공에 텅 빈 추파를 던지게 하고

수신자불명의 편지를 쓰게 한다.


빗물을 병에 담아 잉크 대신에 글을 쓴다.


맑은 글씨는 먹먹한 마음을 정화한다.


고운 물 받아 내리듯 비가 내린다.

태곳적 내리던 비는 잊어야 한다.


비는 과거를 모른다.


비를 바라보는 나의 눈빛이 뒤를 자주 돌아볼 뿐!


햇빛을 주로 자르던 가위로는 빗줄기를 자르지 못한다.


눈부신 것과 가슴 아린 것은 결이 다르다.


빗물을 받아 둔 그릇을 비운다.


애초부터 갇히기를 원하지 않는 줄도 모르고 흘러가게 내버려 두지 못했다.


비는 회전목마처럼 나아가지만 원운동을 한다.


돌아오기에 능숙한 성질을 스스로 대견해한다.


제대로 떠나지도 못하면서 자주 눈물만 훔치는 바보 같은 비가 내리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비가 오니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