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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Sep 07. 2024

두드리는 일

0818

한 글자도 쓰지 않은 글을 쓰고 싶다.


어느 여가수가 그랬던 것처럼.


침묵하는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한소절도 부르지 않으면서 노래할 수 있을까.


그러면 노래가 아니지 않을까.


말이 되지 않는데 이해가 되고 마음에 와닿는다.


한 글자도 쓰지 않고서 글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이미 액정에 보이는 글도 잉크 한 방울 묻지 않은 허상이니 나는 글을 쓴 것이 아닌 것일지 모른다.


그저 자판을 두드리는 것으로 글을 쓴다고 거짓하고 있으니 나는 글을 쓴 적이 없다.



자음을 두드리면 내 속의 것들이 기어 나오고

모음을 두드리면 네 속의 것들이 요동치나니


가까스로 빗나가지 않을
정도로 두드릴 거예요


글은 북처럼 두드리고 그 두드림에 별처럼 글들이 쏟아지고 그 쏟아진 글들을 뒤집어쓰는 것이 글쓰기인가 보다.


상대를 두드리지 못한 글들은 다시 내게로 돌아와 다그친다.


줄곧 글쓰기는 봉변을 면하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 된다.


거울 앞에 앉아 글을 써야 한다.


베레모처럼 비스듬히 쓰는 모자의 모양새를 점검하듯 글을 바르게 뒤집어썼는지 살핀다.


글은 내가 쓰지만 보는 것은  바깥의 사건이다.


부끄러운 불상사를 피하려면 섬세하게 고쳐 써야 한다.


한 번 쓰는 것은 두 번 두드리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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