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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Oct 16. 2024

겸허란 그물

0857

어느 수도자의 기도는 이러하다


오늘 제게 무슨 일이 생길지 저는 모릅니다.
...영원으로부터 저의 더 큰 선을 위하여 미리 보고 마련하신 것 외에 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 뿐이오나 그것으로 넉넉합니다. ...사랑으로 온 마음을 다해 이를 따르며, ...어려움 중에 참고 견디며, 온전히 순종하게 하소서.


아무리 살아도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오늘을 산다


나와 상관있든 없든 일은 예측하지 못한 모양새로 일어난다


무에서 유로 생기기도 하고 있던 것이 꼴을 바꿔 일어나기도 한다


인간은 일 앞에서 제각각이 된다


대부분의 일어나는 일은 나 아닌 이들의 마음들이 저지르는 것들의 총합이니 어찌할 도리가 숨는다


하물며 일에 관하여 계획도 예측도 부질없는 인간의 영역 밖의 문제인 경우가 부지기수다


오직 겸허로 대할 뿐이다


마치 호랑이 장가가는 날씨같이 맞이할 따름이다


겸허는 해도 비도 모두 의젓하게 감당할 도구이다


제 겸허의 그물 눈이 더 촘촘해질게요


겸허는 결국 '무엇인 체'로부터 자유로운 몸짓이다


위장을 벗고자하는 벗어 던지고자 발악하는 기운으로만 담아 올린 진실의 물고기를 움켜쥐는 쾌감 안에 있다


다시 방생하는 일이 있더라도 그것을 버릴 수 없다


참으로 딱한 인간이 아니 되려니 이토록 고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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