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원에게 질주하던 화의 정체
아파트 주민이 되어보기는 처음이다. 초반에는 이웃 주민들에게 반갑게 인사도 건네고, 경비원이나 미화원들께 먹거리 등을 자주 챙겨드렸다. 재작년 연말에 이사한 후 얼마 안 있어 설 명절이 되었다. 우리 동 경비원이 두 분이라기에 간식으로 나눠드시라고 한 경비원께 30개 들이 초코파이 한 박스를 선물했다. “제가 이런 선물을 받아도 되나요? 정말 제게 선물하시는 건가요?” 의외의 선물이었는지. 아니면 명절에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었는지 감격해하시는 모습이 역력했다. 몇 호냐고 물으셨지만, 그냥 받으시라며 재빨리 돌아섰다.
그렇게 내 편에서의 일방적인 친절을 멈춘 사건이 있었다. 초코파이 한 박스를 드린 이후, 그 경비원이 인사를 받지도 않고 찬바람을 날리는 태도에 무척 당황스러웠다. ‘나를 못 알아보는 건가? 뭐지, 저분?’ 불쾌하고 못마땅했다. 외출해서 늦게 귀가한 어느 비 내리는 밤이었다. 동 입구에서 경비실을 등지고 우산의 빗물을 털어내고 있었다. 갑자기 신경질적으로 쾅하며 경비실 문을 닫았다. 등 뒤에서 일어난 일이라 얼마나 놀랐는지 심장이 벌렁벌렁했다. “심장 떨어지게 왜 그러시냐고?” 화를 내고 싶었지만, 참았다. 괜히 밤에 소란 피우는 것도 민폐라 싫고, 반려인이 옆에 없는데 적반하장으로 경비원이 빽 소리라도 지르면 심장 약한 내가 손해 보는 것도 피하고 싶었다.
반려인에게 실컷 하소연한 다음 날, 경비실 앞 게시판에 관심 있는 게시물이 눈에 띄었다. 급한 볼일로 나가던 참이라 ‘다녀와서 사진 찍어야지.’ 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한두 시간이 지난 후 사진을 찍으려고 게시판을 봤는데, 게시물이 없었다.
“선생님, 조금 전에 있던 게시물이 안 보이네요.”
“무슨 게시물 말이오?”
“네, 00 게시물인데요. 사진 찍으려고 했는데, 사라졌어요.”
“그건 게시 기간이 지난 거요.” 하신다.
“아직 접수기간이 꽤 남아있는 광곤데요. 제가 꼭 필요하니, 좀 보여 주세요.”
경비원은 귀찮은 듯 뒤적거리다 겨우 내놓았다. 더욱이 게시물을 건네주고선 언짢은 듯 경비실 문을 쾅 잠가버렸다.
참았던 화가 터지기 일보 직전, 가까스로 숨을 고르며 올라왔다. 집 근처 아파트에서 관리실 직원으로 일하는 반려인을 둔 운명으로, 아파트 직원들에게 각별히 마음을 써왔다. 좋은 것이면 나누고, 명절이면 가까운 지인을 대하듯 선물도 했다. 근데 돌아오는 게 이런 푸대접과 모멸감이란 말인가. 아파트 관리사무실에 경비원의 무례에 대해 시정을 요구할까 몇 번이나 망설이다 또 참았다.
무슨 이런 경우가 다 있어? 호의를 적의로 갚아도 유분수지! 일하는 반려인에게 통화 가능한지를 묻고 대충 열받은 내용을 쏟았다. 반려인은 혹시 휴게시간이 아니었는지 확인해 보란다. 휴게시간과 경비원 이름을 확인하려고 전화를 끊고 내려갔다. 휴게시간이 아니었다. 경비원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내 쪽을 향해 사장처럼 앉아있는 게 아닌가. 더욱 화가 치밀었다. ‘휴게시간도 아닌데, 아니 휴게시간이라도 그렇지! 월급 받는 경비원이 주민 앞에서 문을 쾅하고 닫지를 않나? 게다가 잠그기까지! 어쭈구리, 이젠 거만하게 사장처럼 기대고 앉았어? 가관이군!’
집에 들어와 씩씩대는 마음을 들여다봤다. 왜 이렇게 화가 나지? 경비원이 편안히 앉아있는 게 왜 보기 싫을까? 나는 왜 아파트 경비원과 미화원에게 마음을 썼지 싶었다. 먼저는 그분들을 존중하고 친절히 대하면, 반려인도 아파트에서 존중받고 친절한 대우를 받겠지 하는 황금률(네가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네가 대접받기 싫은 일을 남에게 하지 말라)과 인과응보에 기대는 마음 때문이었다. 또 하나는 인품과 교양 있는 주민으로 경비원들의 칭찬과 인정을 기대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경비실 안에서 내 쪽을 향해 기대앉아 나를 쳐다보는 모습에 격분한 이유는 뭐였을까? ‘경비원은 거만하게 앉아있으면 안 돼.’라는 무의식적이고 잠재적인 편견이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격분한 하루가 참 길게 느껴졌다. 퇴근한 반려인에게 격동의 하루를 풀어놓았다. 같이 화를 내고, 깊이 공감해줬다. 공감을 받으니 내게도 문제가 있었다는 고백이 쉽게 나왔다. 방에 들어와 심연에 꿈틀대는 인정 욕구와 편견의 마음을 살포시 꺼내 ‘그랬었구나.’ 하며 마음을 다독였다. 반려인에게 진심 어린 공감을 받고, 분노한 마음을 펼쳐서 알아주니 신기하게도 타인에게 질주하던 화가 가만히 내려앉았다.
경비원을 향한 격렬한 분노는 사실 인정 욕구와 편견이 투영된 결과였음을 반려인과의 따뜻한 공감의 경험으로 뚜렷이 깨달았다.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며, 스스로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는 감정인 자존감은 자신의 장점뿐만 아니라 단점까지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태도인 자기 존중과 자신이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능력과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 신념인 자기 효능감, 자신이 존재 자체만으로 소중하고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인 자기 가치감이 핵심이다. 타인을 생각하고 타인에게 반응하기에 앞서 심연에서 꿈틀대는 자신의 진짜 감정을 알아차리고, 존재만으로도 자신이 소중하고 가치 있는 사람, 충분한 사람이라고 느낄 때야말로 자연스럽게 타인을 향한 따뜻한 자존감으로 발휘되리라.
다른 한편에서 생각하면, 경비원은 입주민 및 이용객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고용된 전문가다. 입주민과 시설 이용자는 정당한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고, 경비원은 그에 상응하는 책임과 의무가 있다. 경비원의 불친절한 응대나 무례한 태도는 직무태만이며, 서비스 및 근로계약 위반이다. 그 당시에 관리사무소에 시정을 요구하고 정당한 조치가 이뤄졌다면 지금까지 불쾌하고 찜찜한 기분이 남지는 않았을 것이다.
2년 전세 계약 만료로 다른 아파트로 이사 왔지만. 경비원에 대한 복잡한 감정은 여전하다. ‘선생님’이나 ‘경비원님’ 등으로 존중을 표하는 여성들에게 경비원은 ‘아줌마’나 ‘할매’라 통칭하며 성의 없이 대하는 반면, 보통 인사를 교환하지도 않는 남성에게는 직장상사를 대하듯 깍듯하고 정중하다. 경비원의 이중적 태도에 처음에는 놀랐다가 어이가 없다가 화가 났다 맥이 빠졌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불평등은 우리 사회의 성별 불평등을 보여주는 척도이기에 씁쓸한 감정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
"타인의 신발을 신기 전에는 그 사람을 아는 게 아니다"라는 인디언 격언이 문득 떠올랐다. 경비원에 대한 극소수 입주민의 인격적 모독과 폭행에 따른 경비원의 자살로 2020년 말부터 지자체별로 경비원 인권 조례가 제정되어 시행되고 있다. 장시간 근무나 고용 불안 등의 열악한 근무 환경에 있는 경비원에게 경비 업무 외의 개인 택배 배달이나 사적 심부름 등 부당한 요구를 입주민이 하면 인권 침해가 되듯 경비원 또한 전문가로서 서비스 정신을 가지고 입주민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책임감 있게 일해야 하지 않을까.
따뜻한 자존감은 타인의 자리로 내려가 생각하는 마음에서 서서히 자라는 나무다.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고 1마일(1.6킬로미터)을 걸어보기 전에는 그 사람을 판단하지 마라는 영어 속담처럼 입주민은 경비원의 신발을 신고 100미터라도 걸어보는 심정으로 경비원의 자리를 생각하고, 경비원도 입주민의 신발을 신고 생각해보면 좋겠다. 우리는 타인의 신발을 신고 조금만 걸어도 상대를 이해하는 지점을 분명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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