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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OKA Jan 03. 2023

II. 실낙원

8화

실낙원 (2)

모처럼 숙면다운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예전처럼 일찌감치 일어나 노트를 펼쳐 들었다. 그리고 엄마가 알려준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확인하기 위해 첫 직장부터 마지막 직장까지 해왔던 것을 나열해 보기 시작한다.


점심 무렵이 되었을까. 배고픔도 잊은 채 내가 나열한 일들과 그 안에 적힌 수많은 일들은 예상외로 상당히 많았고, 그 당시 헤처 나가며 걱정하던 기억도 함께 스쳐 지나간다.


12시가 조금 넘었을 때 모르는 번호에서 전화가 걸려온다. 순간 움찔하면서 혹시 하는 마음에 전화번호를 처다 보지만 역시 모르는 번호다. 받을까 말까 잠시 고민하다 전화를 받는다.

    "네, 강민수입니다.' 아직도 전화받을 때 회사 습관이 남아 있다.

    "어~ 친구, 날세!' 나이 지긋하신 목소리지만 생소한 목소리라 누군지 떠오르지 않는다.

    "자네가 어제 날 황천길에서 끌어 내줬잖아~ 벌써 잊었나?"

    "어르신 어떻게 전화번호를 아셨어요? 잘 들어가셨어요? 지금 몸은 어떠세요?"

    왠지 부모님으로부터 전화라도 온 것처럼 무척이나 반가운 마음에 한순간 여러 가지를 묻는다.

    "자네 오늘 저녁에 시간 있나? 시간 되면 저녁이나 함께 함세 "

    "아.. 네, 그게.."

    솔직히 월급도 한 달 치를 못 받고 나왔고 퇴직금 또한 모두 빚잔치에 쓰니 내 수중엔 돈이 한 푼도 없었다.

    "어 부담 갖지 말고 시간만 내줘~"

    "예, 어르신..."

    "그럼 오후 5시에 그 사우나 앞으로 나오게나."

    "아.. 네 알겠습니다. 어르신.." 망설였지만 부담 없이 나오란 소리에 약속을 잡게 된다.

    어느 순간부터일까 외모에 상당히 신경 쓰던 나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했다. 아니 쓸 겨를도 없었다. 그래도 모처럼의 외출이다 보니 평상시 출근하던 때와 같이 옷을 차려입어 본다.

한 달간의 폭주 때문인지 핼쑥해진 얼굴과 눈가 아래로는 다크서클이 길게 늘어져 보이고 바지 또한 헐렁해져 벨트를 단단히 조여 매야 했다.


추레함 그 자체였다.


집 앞 나들이지만 괜스레 설렘이 몰려오며, 약속 시간보다 빨리 장소로 나가 서성이기 시작했다.

5시가 거의 다 될 무렵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일찍 왔네~!"

    깜짝 놀라 뒤를 보니 지난번과는 사뭇 다른 혈기 왕성한 청년과도 같은 모습의 어르신이 보였다. 순간 당황 하며 인사를 건넨다.

    "아.. 네.. 근간 안녕하셨죠?"

    "어, 자네 덕분에 보는 바와 같이 빨리 회복될 수 있었어. 자~ 일단 여기 말고 내 차로 이동 합시다."

    난 어르신의 꽁무니를 따라 주차장으로 이동한다.  당당하게 앞장서는 그의 모습에 장군의 기백이 느껴지며 난 한순간 일개 조무래기가 된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주차장 한편에 검은색 고급 세단이 서 있었다. 그곳에 양복을 입고 있는 한 남자가 재 빠르게 차 뒷문을 열고 우리를 맞는다.

난 순간 당황하며, 어르신을 처다 본다.

    "어, 부담 갖지 말고 일단 타게나. 오늘은 근사한 데 가서 밥이나 먹자고~."

    차 안에선 클래식 음악이 흐르며 적막감이 흐를 무렵 어르신이 한마디 건넨다.

    "자네는 지금 뭘 하고 있지?"

    순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숨길 처지도 아니기에 솔직히 현재의 내 상황을 말했다.

    "허, 거참. 신세가 딱하게 됐구먼."

    "네, 그게...."

    조금 시간이 흘렀을까. 어느 호텔로 보이는 건물로 들어서고 우리는 8층에 위치한 레스토랑으로 올라간다.


레스토랑 입구에 있던 한 직원이 우리를 보고는 정중히 인사하며 자리로 안내한다. 나름 영업 활동을 하며 고급진 식당을 드나들었지만 이곳의 압도적인 분위기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신비로움 속 경이로움마저 느끼게 만들었다.

    "오늘은 내가 대접하는 거니 부담 갖지 말고, 오늘은 주방장 추천 코스로 함께 먹어 봅시다."

    "아, 네..."

    눈앞에 벌어지는 일들이 마치 영화 속 장면이 떠오르며 마치 꿈속을 헤엄쳐 다니는 느낌이 들었지만 현실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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