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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 방울토마토 마들렌

이열치열 한여름의 더위를 잊게 하는 맛

by 거울새

올해는 유독 발효 식품에 눈길이 많이 갔다. 된장처럼 발효 식품을 디저트에 이용하는 것도 좋았지만, 직접 발효 식품을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하지만 막상 뭔가를 해보려 하면 현실적인 제약이 많았다. 체력적인 문제나 공간 자체의 문제를 고려하면 처음엔 아주 간단한 수준에서 시작해 봐야 할 것 같은데, 좀처럼 눈에 띄는 무언가가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토마토 살차’가 떠올랐다.


토마토 살차는 토마토를 소금에 절여 건조하거나 끓여서 아주 진하게 농축한 페이스트를 말한다. 토마토 무게 2% 정도의 소금을 넣고 실온에서 2일 정도 발효한 뒤 되직해지도록 수분을 바짝 날리면, 진한 토마토 풍미를 가득 담은 토마토 살차를 만들 수 있다. 작년 여름쯤 토마토 살차를 만들어 보려다 실패해서 못내 아쉬운 마음이 있었는데, 다시 여름이 되어 방울토마토를 바라보니 한번 더 토마토 살차를 만들어 보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밀려들었다. 그런데, 왜 결과물은 토마토 살차가 아니라 핫 방울토마토인 걸까. 이야기는 토마토 살차를 만들던 때로 돌아간다.


작년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마쳤던 나는, 이번엔 성공적으로 방울토마토를 발효시켰다. 인터넷에서 본 것처럼 아주 활발하게 공기 방울이 터져 나오진 않았지만, 뚜껑을 열자마자 아주 상큼하고 기분 좋은 과일 향이 잔뜩 뿜어져 나와서 성공을 직감할 수 있었다. 마치 요거트처럼 산뜻한 풍미가 가득해서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살차를 만들 수 있을 거란 좋은 예감이 들었다.


근데, 이게 웬걸.


발효된 방울토마토의 맛을 본 내 얼굴엔 근심이 가득 차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방울토마토가 너무 매웠다. 사실 막상 토마토 살차를 만들려니 작년과 크게 다른 부분이 없는 것 같아 내심 찜찜한 마음이 들었고, 이리저리 검색하다가 변질도 막을 겸 전날 수육을 먹으며 곁들이고 남은 청양고추를 아주 조금 넣었는데, 그게 이렇게나 매울 줄이야. 난감한 기분이었다. 토마토 살차를 농축하니 매콤한 맛이 한층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이대로 그냥 포기해야 하는 걸까.


토마토 살차를 마들렌에 더해도 여전히 매콤한 맛이 강렬할까? 그건 아닐 것이다. 계란과 버터에 매운맛이 희석될 것이고 되레 은은한 매운맛이 날지도 모른다. 매콤 달콤한 맛. 어찌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맛이 아닌가. 어차피 언젠가 고추장도 이용할 생각이었는데, 기왕 이렇게 된 거 매콤함을 살린 마들렌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그렇게 오늘은 핫 방울토마토 마들렌을 만들게 되었다.


청양고추 특유의 강렬한 매운맛과 발효된 토마토의 산뜻한 감칠맛을 좀 더 선명하게 남기면서 토마토 살차 특유의 매콤한 감칠맛과 조화를 이룰만한 재료는 뭐가 있을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후추’였다. 흑후추와 달리 말린 토마토의 풍미를 연상시키는 은은한 과일 향을 품은 ‘적후추’. 후추 특유의 매콤함과 화사한 풍미의 적후추라면 좀 더 다채롭고 선명한 매콤함을 표현할 수 있을 거다. 거기에 이국적이면서 진하게 고소한 맛의 피스타치오를 잔뜩 다져 올리면 매콤한 맛도 어느 정도 잡아주면서 매력적인 식감도 제공해 주리라. 마지막으로 토마토 살차를 넣어 만든 글라쎄까지 발라주면, 매콤 상큼한 토마토 살차의 또렷한 존재감까지 보여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본격적으로 매콤함을 주제로 한 마들렌은 처음이라 맛이 참 궁금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매력적인 마들렌이 탄생했다. 사실 명확하게 어떤 맛이라고 표현하기엔 조금 생소해서 처음 입안에 마들렌을 넣었을 땐 뇌가 살짝 버벅거렸다. 하지만 어쨌든 분명 맛있었다. 청양고추의 쨍한 매콤함이 뛰어오는가 싶더니 어느새 입안 가득 오독오독 씹히는 피스타치오의 진한 고소함이 혀 위를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근데, 그 피스타치오가 온몸에 후추로 향수를 뿌린 듯 향긋한 후추 향이 함께 퍼져 나갔고, 뒤이어 다시 알싸한 청양고추의 존재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부드럽고 폭신한 식감의 마들렌은 마치 로제 소스를 처음 먹었을 때처럼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은은한 토마토의 풍미로 맛의 중심을 잡아주었다. 흡사 축제의 현장. 입안을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매콤한 맛의 회오리는 왠지 뜨거운 정열의 느낌이었다. 어쩌면 멕시코. 그래, 마치 멕시코를 한입에 털어 넣은 기분이었다.


¡Viva Mexico!


무더위에 지쳐 한없이 입맛이 없어진다면, 이열치열을 핑계로 매콤한 마들렌과 함께 입안에 색다른 파티를 열어봐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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