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착한 병은 없다.
나는 건강과 관련된 요소 앞에 ‘착한’ 혹은 ‘나쁜’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게 정말 싫다. 건강에는 절대적인 진리가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착한 혹은 나쁜 이라는 수식어는 특정 요소에 대해 그릇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고, 불필요한 오해를 초래할 수 있다. 특히나 만성질환자들에게 착한 병 같은 수식어는 그저 잔인하기만 하다.
예를 들어 감기나 배탈 같은 일상적인 질병에 걸렸다고 생각해 보자. 혹은 그보다 조금 심한 장염에 걸린 상황이라고 가정해도 좋다. 이 경우에 인생이 끝난 것 같은 절망감을 느끼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감기와 배탈의 증상이 가볍기 때문일까?
단언컨대, 아니다.
일상적인 질병에 걸렸을 때 별다른 동요를 하지 않는 이유는 그 질병의 증상이 단기적으로 끝날 걸 충분히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목감기에 걸렸는데, 그 증상이 평생 지속된다면? 단순한 설사병에 걸렸는데, 그 증상을 매일 겪어야 한다면? 아마, 엄청난 좌절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만성질환이라는 건 그런 것이다. 증상이 비교적 가볍고, 목숨과 직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여 갑상샘암을 일명 ‘착한 암’ 따위로 부르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착한 암’이라는 단어만 듣고 지레짐작하여, ‘갑상샘암은 수술만 하면 낫는다더라’ 같은 위로의 말을 건네게 된다. 하지만, 환자 본인에게 가벼운 질병은 절대 없다. 발병 이후 삶은 발병 이전으로 완전히 돌아갈 수 없고, 필연적으로 자잘한 유무형의 불편함이 생겨난다.
나는 지병 자체가 다양한 합병증을 유발해서 지난 십여 년간 정말 다채로운 증상들을 경험했는데, 확실한 건 무엇 하나 쉬운 증상은 없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입술 위에 생긴 아주 작은 염증조차 다양한 방법으로 일상을 방해하는데, 본격적인 질병은 말해 뭐 할까.
이번 주엔 갑자기 갈비뼈가 아팠다. 정확히 말하면 갈비뼈 사이 근막에 통증이 생겼다. 솔직히 왜 아픈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쨌든 지병 때문일 것이 뻔했다. 최근 몸 상태가 조금씩 회복되곤 있지만, 사실 이미 워낙 쇠약해져 있어서 외부의 충격엔 너무나 취약한 상태다. 언제든 한번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이렇게 느닷없이 통증이 생길 줄은 몰랐다. 게다가 갈비뼈는 문제가 생겨도 쉽게 조치할 수 있는 부위가 아니었다.
그리고 통증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처음엔 팔만 최대한 안 움직이면 될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지내다 보니 갈비뼈에 붙은 근육이 실생활에 사용되는 일이 너무나 많았다. 사소하게는 숨을 크게 들이마실 때부터, 앉거나 일어설 때, 눕고 일어날 때, 심지어 화장실에서 볼일 볼 때조차 힘을 제대로 줄 수가 없었다. 사실 아픈 부위 자체는 그리 넓지 않은데, 그게 어찌나 쿡쿡 쑤시던지… 잠을 자다가도 자세를 바꾸다 갑작스러운 통증에 화들짝 놀라서 깨는 일이 잦았고, 재채기라도 하게 되면 가슴을 부여잡고 갈비뼈가 최대한 흔들리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해야 했다. 갈비뼈의 통증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일상을 좀먹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마들렌을 만드는 일에도 큰 차질이 생겼다.
조심스레 움직이면 큰 탈이야 없겠지만, 아무래도 자꾸 몸을 움직이다 보면 갈비뼈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번 주는 그냥 한 주 쉬어갈까 고민도 했다. 하지만, 저번 주에 몽블랑 마들렌을 만들고 남은 보늬밤 조림(이하 보늬밤)을 그대로 두기는 아쉬웠다. 그래서 오늘은 남은 재료로 조금 색다른 보늬밤 마들렌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마들렌 반죽엔 보늬밤 가루와 볶은 보늬밤 가루, 그리고 보늬밤 시럽을 졸여서 섞어줬고, 표면엔 두 종류의 보늬밤 페이스트를 번갈아 얇게 발라줬다. 이번 보늬밤 마들렌의 핵심은 보늬밤, 그 자체였다. 보늬밤에는 밤 특유의 부드러운 구수함이 있고, 속껍질과 함께 조리면서 농축된 깊이 있는 단맛과 아주 흐릿한 쓴맛도 담겨있다. 이런 보늬밤 풍미에 마들렌의 은근한 버터 향과 입체적이고 고소한 견과류 풍미, 옅은 캐러멜 향 그리고 보늬밤을 만들 때 포인트로 더해줬던 커피 술의 풍미가 은은하게 더해졌다. 덕분에 폭신한 마들렌에 담긴 다채로운 보늬밤의 풍미를 한꺼번에 만끽할 수 있었다.
더없이 가을다운 맛을 마주하고 나니 되레 심란해졌다. 가을을 맞아 너무 성급하게 몸을 움직인 걸까. 나는 아직도 내 몸을 다루는 게 서툰 것 같다.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찬바람이 불어온다.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가자. 욕심내지 말자. 그저 더 아프지만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