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1 그 남자는 90년대에서 왔다
“재미나이님, 혹시… 막말남님 다시 만나볼 생각은 없으신 거죠?”
매칭 매니저의 목소리는 마치 내가 그녀 인생을 한 번쯤 박살 낸 악역이라도 되는 듯 떨렸다.
“매니저님, 괜찮으세요? 목소리가… 좀 지쳐 보이네요.”
내가 묻자, 전화기 너머에서 무덤 깊은 곳에서 끌어올린 듯한 한숨이 흘렀다.
“저희 일이긴 한데… 하아. 이게 사람을 좀 갉아먹죠.”
막말남이 또 무슨 황당한 말을 뱉었는지, 굳이 묻지 않아도 머릿속에 장면이 재생됐다.
아마도 “여자는 서른 넘으면 할인 매대행” 같은 말을 무심히 던졌겠지.
“이번엔 공감 못 해남 어떠세요?” 매니저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나이는 조금 있지만, 서울에 자가도 있고, 자산도....”
그녀는 그의 장점을 줄줄 읊기 시작했다. 마치 낡은 아파트를 팔기 위해 억지로 미소 짓는 부동산 중개인처럼.
곧 도착한 이메일 속 사진. 흐릿한 눈빛, 굳은 표정. 사진인데도 대화가 막힐 것 같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이 남자, 혹시 AI가 만든 NPC 아니야?
한여름, 숨이 턱턱 막히던 주말 오후.
커피숍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얼굴과 얼굴이 뒤섞여 누구 하나 구분하기 힘들었다.
“띠리리—”
“여보세요?”
“재미나이님? 저 공감 못 해남입니다. 입구 쪽, 넥타이 맨 남자요.”
그 순간 눈앞에 펼쳐진 광경.
한여름에 겨울용 정장을 입고 땀을 폭포처럼 흘리는 남자. 넥타이는 80년대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줄무늬.
‘돈 많다더니, 왜 날 90년대 시간여행자로 만드는 거지?’
“양복은… 평소에 안 입어요. 이게 유일한 정장이거든요. 하하, 더워 죽겠네요.”
그는 얼굴이 토마토처럼 달아올라 손수건으로 땀을 훔쳤다.
손수건이라니. 이 남자, 혹시 시간을 거꾸로 사는 건가.
“사람 좀 적은 데로 갈까요?” 내가 제안했다.
“아, 저 커피숍 같은 데 잘 안 와요. 사무실에서 믹스커피나 마시죠.”
“믹스커피… 요?”
순간, 옛 드라마 속 부장님이 “미스 김! 커피!”를 외치던 장면이 떠올랐다.
20XX년에 믹스커피라니. 설마 냉동인간?
“풋, 죄송하지만… 요즘 믹스커피 드시는 분 계세요? 저는 캐러멜마키아토나—”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마치 비밀요원을 찾는 첩보원처럼.
“뭐 찾으시는 거예요?”
“아뇨, 그냥. 믹스커피 좋아해요. 원래부터. 밥 먹을래요?”
밥? 지금?
대화가 아니라 단어 배틀 같았다.
공기는 점점 뻣뻣해지고, 나는 그의 땀에 젖은 정장을 멍하니 바라봤다.
저 안에 숨 쉬는 사람, 정말 있는 걸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말로만 좁혀지지 않는다.
말이 많아도, 정작 아무것도 닿지 않을 때가 있다.
그날의 대화는 따뜻함도, 설렘도 없었다.‘공감’ 없는 대화는 침묵보다 더 잔인하다.
침묵은 적어도 솔직하니까.
We spoke the same language, but we were shouting into different voids.
(같은 언어를 썼지만, 서로 다른 공허 속으로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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