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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드롱 Feb 14. 2022

마녀 엄마의 평범한 오후

태어나는 별, 스러지는 별



이상하게도 아들의 하원 시간이 다가올수록 몸이 급격히 무거워진다.

눈이 감긴다. 눕고만 싶다. 이러면 안 되지 싶어 커피 한 잔을 들이켜고, 겨우 냉장고를 열어 저녁거리를 탐색한다. 날아갈 듯 집으로 돌아온 아이를 씻기고 옷을 갈아입힌다. 간식을 먹인다. 아들은 나와 놀 생각에 신이 나 있다. 함께 팽이를 돌리고, 더하기 빼기, 한글 알파벳 학습지 조금 해치우고 저녁을 만든다. 자기랑 안 놀고 싱크대 앞에서 혼자 노는 내가 아들은 서운한 눈치다. 나는 모른 체한다. 밥을 먹고 치우고 또 로봇 놀이를 한다. 카드게임도 하고 엄마 고양이 아기 고양이 놀이도 한다. 아기고양이는 백퍼센트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엄마 고양이는 백퍼센트 사랑과 보살핌을 줘야 한다. 빙글빙글 피곤해서 자꾸 실눈이 되는 나와 반대로 7살의 생명은 너무나 팔팔하다.


눈치를 봐서 놀이 한 판 더 하고 치카를 하기로 한다. 달아나고 싶은 작은 동물을 어렵사리 욕실로 유인한다. 쏙 들어오는 작은 얼굴을 한 팔에 단단히 끼우고 양치를 시킨다. 아들은 맑은 눈으로 벌건 내 눈을 본다. 이는 너무나 작고 하얗다. 밥풀만 한 아랫니 하나가 빠진 좁은 자리에 영구치가 무언가의 복선인 듯 삐딱하게 자리를 잡았다. 세수를 시켜놓으니 아이 얼굴이 반짝반짝하다. 아. 아직 새것. 무엇에도 가려지지 않는 투명한 빛. 상쾌해진 작은 호랑이는 침대 위에서 뛰기 시작한다. 협박과 구슬림으로 진정시킨 후 최대한 글밥이 적은 동화책을 읽는다. 이제 거의 다 왔다. 목이 마르다. 열 권도 스무 권도 읽어주는 엄마들도 많다는데 두 권만 겨우 읽고 이제 자자고 하니 원통한 얼굴로 울먹인다. 졸리지도 않은데 자라고 하고 창문 열고 자고 싶은데 열어주지도 않고 눈이 자꾸 떠지는데 감으라고 해서 너무 힘들단다. 왜 매일매일 잠을 자야 하는 거냐고 운다. 나는 못 자서 울고 싶단 말이다, 응?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잠이 찾아온다고 하니 자꾸 손과 다리가 저절로 움직여진단다. 그래도 내 눈치를 보느라 아들은 고분고분 눈을 감고 잠이 오기를 기다린다. 꼬물거리는 손가락의 움직임이 잦아들기를 나는 배고픈 짐승처럼 숨죽여 기다린다.  


시간이 길어진다. 나는 핸드폰으로 아무 거라도 보고 싶은 것을 참는다. 어둠 속에서 부드러운 이마에 입술을 대고 등을 토닥인다. 마음은 내달리는데 결코 표시를 내선 안된다. 이제 고지가 눈앞이니까. 다 된 밥에 코 빠뜨리랴. 참자. 녀석이 잠들자마자 미드라도 봐야지. 시원한 얼음을 담고 벌컥벌컥 뭐라도 마셔야지. 냉장고에서 쥐포도 꺼낼까. 자장자장. 빨리 자라. 아들은 눈을 떴다 감았다 한다. 나도 눈을 살그머니 뜨고 아들을 훔쳐보고 아들도 나를 몰래 본다. 둘 다 번갈아 눈을 감았다 떴다 한다. 이제는 자는 줄 알았는데 어둠 속에서 여전히 동그란 눈이 반짝 떠졌다. 무섭다. 그 속에 별은 초롱초롱하다. 나는 맥주를 생각하며 깜박깜박 떨어지려는 정신을 붙잡는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아이의 별이 천천히 감긴다.


그때다.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 삑삑삑삑삐릭. 점퍼에 차가운 바람을 묻힌 남편이 들어온다. 현관문이 쾅 닫힌다. 씻지도 않고 우리가 자는 방으로 곧장 들어온다. “자?”큰 소리로 말한다. 아이는 눈을 번쩍 뜬다. 온몸에 다시 힘이 들어가서는 벌떡 일어난다. “아빠!” 다시 장난을 시작할 기세다. 나는 마침내 본색을 드러낸 마녀처럼 눈을 부라리고 험하게 외치고 만다. “쉿! 빨리 안 누워! 나가! 나가!”


맥주와 쥐포가 다시금 저 멀리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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