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에도 다시 바다로 나갈 수 있는 회복탄력성
84일, 노인이 물고기를 단 한마리도 잡지 못한 일수입니다. 같이 배를 타던 소년도 소년의 부모 반대로 다른 배로 옮겼습니다. 정말 '살라오(Salao)'* 불운인 걸까요? 하지만 노인은 오늘도 어김없이 출항 준비를 합니다. 85일째, 바다는 그에게 무엇을 가져다줄까요?
(*Salao - 불운하다라는 뜻의 스페인 속어입니다.)
'노인과 바다'를 집필할 당시 헤밍웨이는 요즘 말로 하면 감이 다 죽었다는 평을 받고 있었습니다. 10년 간의 공백기 끝에 출간한 장편 '강 건너 숲 속으로'(1950)가 악평을 받으며 “헤밍웨이가 끝났다”라는 말까지 들었죠. 자존심에 큰 금이간 그는 반드시 명예회복을 하겠다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 작품, '노인과 바다'는 1952년 '라이프'지에 전편이 실리자마자 이틀 만에 530만 부가 팔리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작품은 다음 해 퓰리처상을, 추후 노벨문학상까지 안겨 주며 헤밍웨이가 아직 살아 있음을 화려하게 증명했습니다.
소설의 주인공 노인, '산티아고'와 헤밍웨이는 닮은 점이 많습니다. 노인도 지금은 여위고 지쳤지만, 한때는 팔씨름으로 하루를 통째로 보내도 끄떡없을 만큼 건장했지요.
이제는 한마리도 잡지못하는 노인이지만 그는 다시 바다로 나갑니다. 오늘은 더 멀리 가야지 다짐하면서요.
인간은 파괴될 순 있지만 패배하지는 않는다.
노인이 끝내 포기를 몰랐던 끈기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라는 심리 근육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회복탄력성은 시련을 딛고 다시 일어서는 힘으로, 타고난 기질에 더해 낙관, 의미 지향, 행동 중심 대처, 사회적 연결―네 가지 축이 어우러져 자라납니다.
낙관
85일째 되는 날, 노인은 “오늘은 자신감이 솟는다”고 말하며 조각배를 몰아 바다로 나갑니다. 빈 손으로 돌아왔던 날들을 떠올리기보다 다가올 행운을 먼저 그려 보는 마음이 원동력이 되죠.
의미 지향
그의 배 보다 더 큰 거대한 물고기가 낚시를 물자 그는 고기의 힘에 휘청이면서도 존경심을 잃지 않습니다. “네가 위대해야 이 싸움이 가치 있다.” 고기를 ‘형제’라 부르며, 위대한 상대를 통해 자신 또한 존엄을 증명하려 합니다.
행동 중심 대처
사흘 동안 끌려다니며 손이 베이고 왼손이 경련으로 굳어 가도, 노인은 멈추지 않습니다. 손바닥이 찢기면 돛 천을 찢어 응급 붕대를 만들고, 줄을 어깨로 옮겨 힘을 분산하며 끊임없이 전략을 고쳐 나갑니다. 흐릿해지는 시야 속에서도 그는 다시 한 번 줄을 당겨 결국 고기에 작살을 꽂아 넣습니다.
사회적 연결
고요한 바다에서 외로움이 밀려올 때마다 그는 “소년이 여기 있었다면…” 하고 함께 고기 잡이를 하던 소년, 마놀린을 떠올립니다. 소년은 노인이 바다에서 외로운 사투를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죠. 육지로 돌오자 소년은 엉엉 울며 “다음 항해에 함께 가요”라고 합니다. 관계는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난로가 되어 노인의 회복탄력성에 마지막 불씨를 더합니다.
그리고 이 네가지 축은 상어로부터 고기를 지키기위한 노인의 마지막 사투에서 절정에 다다랍니다.
이미 상어가 고기를 많이 먹은 상황이지만 노인은 낙관적으로 생각하며 “아직 남은 살점이 있다”는 가능성에 집중합니다.
이길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상어와의 싸움은 노인에게 ‘전리품 보존’보다 존엄 수호의 의식이었습니다. “어부는 끝까지 어부답게”라는 자기 기준을 지키려 한 것이죠.
또한, 무기를 하나씩 잃어갈때마다 남은 도구를 재조합에 끊임없이 상어와 싸웁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년을 생각하며 힘을 얻죠.
이처럼 네 축이 맞물린 덕분에 노인은 비록 뼈만 남은 고기를 가지고 돌아왔지만, 다음 날 다시 바다에 나갈 용기를 얻습니다. 우리 역시 같은 태도를 품는다면 삶의 고된 항해에서 끝내 노를 놓지 않을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상에서 어떻게 회복탄력성을 키울 수 있을까요?
노인의 여정에서 얻은 실전 팁을 정리했습니다.
1. 실패 일지 쓰기
실패를 세 줄로 요약하고 “무엇을 배웠나?”라는 한 문장 질문으로 마무리합니다. 기록은 마음속 혼란을 외부로 꺼내며 거리를 만듭니다.
2. 미니 승리 축하
하루를 돌아보며 “오늘 해낸 일 하나”를 찾아 스스로 칭찬해주세요. 뇌는 작은 보상을 기억해 다음 시도를 돕습니다.
3. 응원 네트워크 구축
믿을 만한 사람에게 현재 고민을 구체적으로 나누고, 의견보다 “들어주기”를 요청해보세요. 누군가가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긴장이 완화됩니다.
4. 신체 활용 전략
산티아고가 노를 저었듯, 산책·스트레칭·가벼운 운동으로 머릿속 부담을 분산합니다.
5. 심볼 마련
노인은 사자 꿈을 꾸며 의지를 충전했습니다. 나만의 상징(사진·문장·음악)을 정해 힘이 빠질 때마다 바라보는건 어떨까요?
노인이 맞선 상대는 거대한 물고기이기도 했지만, 근원적 도전은 체력 저하와 의심, 외부 시선 등 내면에서 일어난 파도였습니다. 물고기가 뼈만 남은 뒤에도 그는 “내일은 또 출항하겠다”고 미소 짓죠. 회복탄력성은 실패 부재가 아니라 실패와 함께 걷는 자세입니다. 우리 앞에 밀려오는 파도가 사라지지 않더라도, 노인을 떠올리며 다시 노를 잡을 수 있습니다. 항해를 거듭할 때마다 우리는 어제보다 더 강한 자신을 만나게 될테니까요.
매주 목요일 고전 속 심리에 대해 연재하고 있습니다.
다음엔 어떤 인물의 마음을 들여다볼까요? 여러분에게 작은 위로와 통찰을 주는 글을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