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다른 윤리 체계에서 살아간 스트릭랜드와 의미중독
달과 6펜스의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는 정말이지 지독한 사람입니다. 이 정도는 해야 천재 예술가라고 불릴 수 있는 건가 싶죠.
그는 보통 사람이라면 하지 않을 선택을 합니다. 아내와 아이들, 사회적 지위, 안락한 삶... 이 모든 걸 버리고 본인의 꿈을 쫓아 파리로 떠납니다.
그래요, 꿈을 좇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가 주변인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어느 날 갑자기 편지 한 장으로 나는 이미 떠났다고 통보만 했죠. 심지어 전혀 미안함도 느끼지 않습니다. 그에겐 삶의 의미만이 중요했어요. 의미에 중독된 상태였던 거죠.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삶의 의미를 발견한 사람은 어떤 고통도 견딜 수 있다.”
스트릭랜드도 그랬습니다. 그는 고통, 가난, 질병, 고립 모두를 견뎠습니다.
그를 지탱한 것은 단 하나, 바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뭐든 많이 먹으면 탈이 나듯이, 의미에 너무 집착을 하게 되면 문제가 됩니다.
스트릭랜드에게도 그 의미가 너무 크고 너무 절대적이었습니다. 그에게 그림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살기 위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었습니다.
이처럼 삶의 의미가 인간을 지배하고, 모든 감정과 관계를 무력화시키는 상태를
우리는 ‘의미 중독(Logotherapy Overdrive)’이라 부릅니다.
스트릭랜드는 그림을 위해 그를 얽매던 세속을 떠납니다.
그는 이렇게 묘사되죠.
"인습 따위에 붙잡혀 있을 사내가 아니었다... 그래서 이자는 도덕의 한계를 넘어선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남겨진 가족에 대해서 그는 태연하게 말합니다. 알아서 잘 살아갈 거라고.
그를 사랑하는 여인이 그에게 버림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어도 전혀 중요할 것 없는 사람이라며 무심한 태도를 보입니다.
그는 그저 그림을 그릴 뿐이죠.
우리는 일반적으로 “사람은 사람에게 미안할 줄 알아야 한다”라고 배웁니다. 하지만 이런 윤리는 스트릭랜드에게 통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기 내면의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명령만을 따릅니다. 그의 행동에 악의는 없습니다. 따듯한 사람도 아니지만요.
그는 단지 예술에 방해되는 일은 가치를 두지 않은 겁니다. 의미가 전부인 삶에 인간적인 일은 모두 우선순위 밖으로 밀려난 셈이죠. 이 또한 의미 중독이 보이는 전형적 단면입니다.
그의 진짜 생활은 꿈과 잠시도 쉬지 않는 그림 작업,
이 두 가지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스트릭랜드는 보편적인 ‘좋은 사람’의 기준을 끊임없이 무너뜨립니다.
그렇다고 방탕하거나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자기만의 윤리를 따릅니다.
그는 타히티로 떠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도 그답게 살아가죠. 도시에서의 삶을 완벽하게 버리고 자연 속에서 그림을 계속 그립니다. 결국 그는 한센병에 걸러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죽습니다.
누군가는 비참한 최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가족과 연인은 그로 인해 고통받았고, 그 자신도 가난과 아픈 몸을 이끌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완결된 삶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에게 세계는 ‘옳고 그름’이 아니라 *‘예술인가 아닌가’*로만 나뉘었으니까요.
스트릭랜드는 극단적인 의미 중독의 예시입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의미 중독'의 초기 단계를 일상 속에서 겪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말들에서요:
“지금 하는 일이 진짜 내 길이 맞는지 모르겠어.”
“이 일엔 아무 의미가 없어. 하루하루가 허무해.”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따로 있는데…”
이런 감정은 자연스러운 고민이지만, '의미를 찾아야만 한다'는 강박으로 흘러가면,
오히려 현재의 삶을 버리게 되고, 스스로를 고립시키거나 자책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의미 중독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1. 의미를 ‘찾기’보다 ‘만들기’에 집중하기
의미는 어딘가에 완성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조금씩 만들어갈 수 있어요.
[예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이건 나를 위한 시간이야”라고 생각해 보기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이걸 하는 내가 좋아”라고 말해주기
2. '완벽한 의미'라는 환상을 내려놓기
스트릭랜드는 ‘오직 그림만이 내 의미’라고 믿었기에 다른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삶은 그렇게 단일하지 않아요. 의미는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개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시]
“일은 지치지만, 가족과의 저녁 식사가 나에겐 진짜 의미야.”
“직업은 고민 중이지만, 지금은 내 건강을 챙기는 게 나에게 더 중요해.
3. '현재의 감정'을 기준으로 삶을 바라보기
의미 중독은 자꾸 미래에 기준을 둡니다.
“이게 내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될까?”
“5년 뒤에도 가치 있는 일일까?”
하지만 지금 내가 웃고 있는지, 편안한지, 몰입하고 있는지가 훨씬 더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어요.
[예시]
"지금 이 순간 집중되고 있다면, 그건 이미 충분한 의미야.”
4. 누군가와 연결된 의미도 같이 생각하기
의미 중독은 종종 ‘나만의 의미’에 집착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의미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더 풍부해져요.
[예시]
“내가 이 말을 하니까 친구가 웃었다.”
“이 작은 도움이 누군가에게 기분 좋은 하루가 되었겠지.”
이런 따뜻한 연결은 가장 일상적이고, 가장 강력한 의미가 됩니다.
5.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는 말, 스스로에게 해주기
완벽한 방향, 거대한 사명감 없이도 그저 하루를 잘 살아내는 것 자체가 의미일 수 있어요.
[예시]
“오늘은 별일 없었지만, 잘 먹고 잘 쉬었으니 괜찮아.”
“의미를 모르겠는 날도 있어. 그래도 괜찮아.”
스트릭랜드를 바라보면 불편해집니다. 사회적 윤리를 벗어나서도 그는 놀라울 만큼 흔들리지 않고 살아가니까요.
그러나 그 극단의 의미 중독 속에서, 그는 결국 인간다움을 잃었습니다.
우리는 그처럼 살고 싶지 않지만, 그의 삶은 거울처럼 우리를 비춥니다.
“의미는 나를 살리는가, 아니면 다치게 하는가?”
그 질문을 품고 걸어갈 때, 우리는 의미도 인간다움도 함께 지킬 수 있습니다.
매주 목요일 고전 속 심리에 대해 연재하고 있습니다.
다음엔 어떤 인물의 마음을 들여다볼까요? 여러분에게 작은 위로와 통찰을 주는 글을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