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알쓸신잡 2
어느 날 인스타그램에서 우연히 본 짧은 영상 하나가 인상 깊어 전체 영상을 찾아본 적이 있다.
알쓸신잡 2의 사도세자 편으로, 출연진들이 어릴 적 좋았던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그 누구도 특별한 것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너무나 평범한 일상 중의 일상, 누구나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에서 겪었음직한 기억을 떠올린다.
엄마 등에 업힌 채로 형이 학교 가는 것을 지켜보던 기억, 사소한 행동에 엄마가 해주었던 칭찬과 그때 자신이 느꼈던 자랑스러움, 엄마 품에 안겨 엄마의 금목걸이를 입에 넣었다 뺐다 했던 기억 등.. 잠이 든 자신을 아버지가 안아서 옮겨주던 순간에 잠이 깼는데, 너무 좋아서 계속 자는 척을 했다는 유시민의 이야기에 유희열은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사랑받는 느낌이 들어서 눈을 뜨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던 것까지 기억이 난다고.
모두가 정확한 그 당시의 상황보다는 조명이나 분위기, 사랑받는 듯했던 느낌, 엄마의 따뜻한 손길 등의 감각을 기억했다.
온갖 풍파를 겪어왔을 중년의 출연진들이 모여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련하기도 하고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 강해 보이는 어른들도 부모가 세상이고 보살핌이 필요했던 어린이었던 시절이 있고, 몇십 년이 지났지만 가족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충족감, 평범한 하루에 느꼈던 안정감, 다정한 손길을 또렷이 기억한다는 사실이.
영상의 요약본을 엄마에게 보내줬더니 생각나는 게 뭐 있냐고 묻는다. 신기하게도 엄마가 묻자 몇십 년을 잊고 살던 어릴 적 기억이 끊임없이 떠오른다.
일요일 오후마다 엄마, 아빠, 남동생과 목욕탕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중간에 있는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 들러 끝없이 그네를 탔던 기억.
엄마아빠의 칭찬에 발을 계속 굴려 그네를 높이 더높이 올렸고, 목욕탕에서 데워진 두 볼과 열기를 식혀주던 시원한 바람, 해가 어스름히 지고 있어 집에 갈 때에는 어두운 밤이 되었던 풍경도 기억난다.
인천에서 할아버지 댁인 거제도로 가던 날들도 기억난다. 깜깜한 새벽에 엄마가 깨우면 눈을 비비며 차 뒷자리에서 웅크린 채 다시 잠이 들었다. 한참 잠이 들었다가 눈을 뜨면 어느새 날이 훤히 밝아있고 휴게소에 들러 엄마가 싸 온 도시락과 휴게소 음식을 다 함께 나눠먹었다. 다시 출발해 엄마아빠가 나누는 대화를 듣다 보면 어느새 또 잠이 들고... 아빠가 거의 다 왔다며 격양된 목소리로 우리 남매를 깨우면, 저 멀리 바다에 조선소 배들이 장난감 배처럼 떠 있었는 광경이 보였다.
동생과 집 건너 슈퍼에 가려고 무단횡단을 하다가 동생이 차에 치인 기억도 있다. 놀라서 동생을 집에 데려가려고 하자 동네 아주머니들이 동생을 병원에 데려가셨고 혼자 집에 남았다.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라 누구에게 연락할지 고민하다가 다니던 피아노 학원에 전화를 했었고, 다행히 동생은 별 탈 없이 돌아왔다.
돌아온 엄마는 무단횡단을 한 것에 대해서 나무라기는커녕 어떻게 피아노 선생님께 전화를 할 생각을 했냐고 칭찬을 해 주었던 것이 기억난다. 놀라고 당황했던 마음이 그 말 한마디에 안심되고 충격은 모두 지워졌었던 것 같다.
동생은 내 손에 이끌려 무단횡단을 하다가 자신이 차에 치인 기억만 남아 있다고 한다. 아직도 그 생각을 하면 동생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사람의 뇌는 평화롭고 일상적인 기억보다는 부정적인 사건을 강렬하게 기억한다고 한다.
이 사실은 특히나 육아를 하면서 절실히 실감했는데, 내가 일 년 내내 다정하게 대해주어도, 아이는 내가 가끔 화를 내거나 혼냈던 며칠 안 되는 날들을 두고두고 기억한다. 심지어 나와 남편은 정말 큰 소리를 내지 않는 편이라 언성을 조금 높이거나 단호한 어조로 몇 마디 하는 것뿐인데 말이다.
오히려 평소에 화내는 모습을 보지 못해서인지 아이에게는 이런 상황들이 굉장히 두렵고 기억에 남는 모양이다.
하임이가 두고두고 이야기하는 사건이 몇 개 있다.
첫 번째, 유치원 버스 타러 가다가 넘어진 날.
엄마, 그때 유치원 버스 타야 한다고 내 손잡고 뛰어서 나 넘어진 거 생각나?
그때가 내가 다친 것 중에 제일 아팠어.
그날따라 아이가 아침에 계속 꾸물대느라 준비를 늦게 했고, 나갔더니 이미 도착한 유치원 버스와 다른 친구들의 엄마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음이 급해 손을 잡고 같이 뛰어가다가 아이가 넘어졌는데, 내가 자신을 빨리 뛰라고 재촉해서 넘어진 기억으로 가지고 있다.
두 번째, 엄마가 화나서 화장실에서 혼자 나간 날.
- (어느 날 갑자기) 엄마, 그때 화장실에서 나한테 화내고 혼자 나간 건 너무 했어.
- 응? 언제?
- 나 6살 때.(현재 8살) 엄마 회사 화장실에서 먼저 나간다고 하고 나가버렸잖아. 얼마나 무서웠다고.
아이가 몇 번이고 이야기하는 날인데, 사실 나는 기억도 안 난다. 아마 화장실에서 말을 안 들어서 먼저 나가있겠다고 하고 화를 삭이려 화장실 앞에 나와있었던 게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세 번째, 엄마가 동생을 낳으러 갔던 때
- 엄마, 엄마가 하루 낳으러 갔을 때 나 밤마다 엄마 보고 싶어서 혼자 울었어.
- 에고 그랬어? 할머니 있는데도 그랬어? 할머니랑 같이 자지 그랬어.
- 우는 거 들키기 싫어서 혼자 소리 안 나게 눈물 닦으면서 잤어. 엄마 내 편지 봤어? 기분 어땠어?
- 엄마도 하임이 편지 보면서 아빠랑 맨날 울었지. 하임이 보고 싶어서.
그러고는 그때 생각이 나는지 또 소매로 눈가를 쓱 닦는다.
알쓸신잡의 마무리쯤에 이런 대화를 나눈다.
"자잘한 행복의 기억이 많은 사람일수록 어른이 되고 나서 작은 일에 행복해 진대요."
"작은 행복감들이 사실 계속 확장되는 거거든요."
이 영상을 보고 난 후 여운이 많이 남아, 아이에게도 작은 행복감을 많이 남겨주려 의도적으로 노력 중이다.
안 그래도 아이가 어려서 이제는 잊었겠다 싶었던, 4~5살쯤 함께 놀러 다닌 날들을 많이 기억해내 가끔은 나와 남편을 놀라게 한다. 정확한 장소는 기억 못 하지만 무 뽑기를 하고는 잘 뽑는다며 자신이 칭찬받았던 것, 레일바이크를 타며 뒤따라오는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메롱메롱하며 깔깔 웃었던 기억. 엄마 아빠와 강아지들과 산책을 했던 순간 등.
특히 요즘엔 6살 터울이 나는 동생이 있으니 그동안 혼자 받았던 관심과 사랑을 뺏겼다고 느끼지 않게 남편과 아주 신경을 쓰고 있다.
여동생과 5살 터울이 나는 친구에게 “혹시 동생이 태어났을 때 기억이 나? “하고 묻자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다 기억나지. 좀 커서 머리로는 엄마가 동생 챙겨줘야 되고 나도 동생을 돌봐줘야 된다 생각하는데 그래도 한 번씩 엄마가 나만 예뻐해 줄 때가 그립고, 엄마한테 안기고 싶고 하거든. 그럴 때 엄마가 내 맘을 알아주고 한 번씩 꼬옥 안고 사랑한다고 말해주기만 해도 좋더라고. 동생 잘 챙겨줘서 고맙다고 칭찬해 주면 좋고.
친구의 메시지를 보고 요즘 부쩍 자꾸 무릎에 앉고, 안아달라 업어달라고 하는 하임이의 마음이 이렇지 않을까 싶어 어찌나 가슴이 아리던지. 아마도 하임이의 나이쯤이었을 친구의 어린 마음을 생각하며 몇 번이고 되새김질하며 읽었다.
나와 남편만이 할 수 있고 지금만 해줄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의무가 생겼다.
따뜻하고 안정적인 기억, 사랑받는 기억을 많이 많이 남겨줘야지. 힘들 때면 꺼내 볼 수 있는 행복의 기억을, 내가 많이 사랑받으며 자랐구나 하고 늘 살 수 있게 잔뜩 쌓아줘야지. 더 많이 안아주고 표현해 줘야지.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늘 이야기해 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