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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곡자매 Jan 29. 2018

[번외] 삐삐의 선물

영원한 나의 동생, 나의 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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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쓰는 편지

삐삐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주말에 친정을 다시 방문했다. 누구보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던 집에서 삐삐의 흔적과 빈자리를 견뎌야 할 엄마에게 줄 책과 편지, 강아지 인형을 챙겼다.

그리고 마음을 추스르는데 편지 쓰기가 도움이 될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삐삐에게 편지를 썼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삐삐에게 편지를 썼다


내 동생으로 와주어 너무 고마웠고, 너와 함께하는 시간 동안 우리 가족은 넘치도록 행복했다고.. 혹여나 가족들에게 서운한 게 있었다면 착한 네가 다 잊고 행복한 기억만 가져가 줬으면 좋겠다 썼다.

그리고 다음엔 누나의 아기로 다시 와 달라고..

사람의 긴 명만큼 오래도록,
부모가 자식에게 주듯 넘치는 사랑을 줄 테니
내 아기로 다시 태어나길..

그렇게라도 연을 이어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을 담아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적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가족들과 평소처럼 저녁을 먹고, 분위기가 좀 처지긴 했지만 삐삐의 이야기를 나누며 조금은 웃기도 했다. 삐삐를 보내고도 웃는 내 모습을 보며 '그래, 이렇게 지내다 보면 곧 괜찮아지겠지. 역시 산 사람은 이렇게 사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가 끝나고 아빠와 동생과 삐삐의 유골을 뿌리기 위해 평소 자주 산책 나갔던 중랑천에 나갔다. 삐삐가 신나게 뛰어놀던 잔디밭을 등지고 중랑천을 바라보며 작은 유골함에 손을 넣었다. 유골을 쥐는 순간, 정말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놀라 꺼억꺼억 소리 내어 울었다. 손으로 쥘 수조차 없이 잘게 부스러진 한 줌의 재처럼 내 가슴도 펑 터져 갈기갈기 흩날리는 순간이었다.

아빠는 가끔 삐삐 사진 앞에 삐삐가 좋아했던 간식을 두신다.




믿고 싶은 기적

한 달쯤 지나고 12월의 어느 날, 하루 종일 배가 싸르르 아팠다.

혹시나하고 사용해본 임신테스트기에 진한 한 줄이 표시되고, 잠시 후 아주 희미하게 한 줄이 더 나타났다.


임신이었다.


처음 알게 된 사실인데 임신 기간을 계산할 때 [마지막 생리 시작일로부터 280일]로 계산한다고 한다.

내 마지막 생리 시작일은 삐삐가 떠난 그 날, 11월 15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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