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목요일 10시 30분, 동네 도서관으로 향한다. 책을 읽은 후 내용과 감상을 나누기 위해 모인다. 독서 모임을 통해 여러 명이 모여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 한 권을 2주에 걸쳐 읽고 돌아가며 소감을 말한다. 책을 읽지 않아도 올 수 있고, 책을 추천한 사람이 논제를 마련해온다. 가끔 책과 관련된 영화도 본다.
책을 매개로 하니 이야기의 가지가 무궁무진하게 뻗어 나간다. 독서 모임 이름이 ‘담쟁이’인데 이름처럼 이야기는 담을 넘어 엉뚱한 곳으로 흐르기도 한다. 책 속 인물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배경에 빠져들고 스토리에 빨려든다.
코로나로 오랫동안 비활성화 상태이던 모임이 3년만에 재개된 어느 날 여러 가지 일을 할 회장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날 왠일인지 평소 생각이 많고 몸을 사리던 내가 덜커덕 회장을 하겠다고 말해버렸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안일한 마음이 앞섰고 책임을 지거나 강제성이 없다는 것이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 처음 들어온 신입회원이 회장을 하겠다고 자처했으니 다른 회원들은 속으로 뭐라고 생각했을까?
뭘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는지 전혀 모른 채 회장 역할은 시작되었다. 출석을 열심히 하고 가끔 간식거리도 사가고 샌드위치를 만들어가기도 했다. 삶의 활력소이니 식물에 물 주듯 모임을 잘 가꾸고 싶었다. 책을 혼자 읽기만 했고 얘기할 기회가 없었는데 모여서 소감을 나누니 재미가 10배로 늘어났다. 같은 책을 읽었는데 다른 느낌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건천에 비라도 내리는 듯 마음이 유연하고 촉촉해졌다.
재미있는 걸 하나 추가했다. 5점 만점으로 책에 평점을 매기는 거다. 처음에는 0.5점 단위로 했다. 예를 들면 3.5점, 4.5점. 이렇게 점수를 주다가 누군가 3.8점, 4.7점으로 점수를 주기 시작해 디테일해졌다. 똑 떨어지게 점수 주기가 애매할 때 세분화해서 숫자를 얘기한다.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으니 회원들이 모두 즐거워한다. 본인이 준 점수와 다를 때 여기저기서 탄성이 나오기도 하고 ‘어머머’ 소리로 왁자하기도 하다.
‘나는 죽을 때까지 지적이고 싶다 (양원근,정민미디어,2023)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지금 잠시 나의 주변을 짚어본다. 그중에는 내가 원하지 않은 만남도 있고, 내가 간절히 원한 만남도 있다. 그러나 이 순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대부분의 만남이 나를 이끌어가고 내 삶을 만들어가지만, 결국 그것을 선택한 건 나의 몫이라고. 파리와 만나 그것을 쫓으면 평생 더러운 곳만 다니겠지만, 꿀벌을 만나 그걸 쫓으면 영원히 함께 꽃밭을 거닐게 될 것이 아닌가. 정말이지 파리는 내 취향이 아니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그러한 만남에 이끌려가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책을 편다. 수많은 지식인의 지혜와 경험은 내게 올바른 선택의 길을 안내해주기에. 그리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파리가 아닌 꿀벌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과 오래도록 아름다운 꽃길을 거닐게 되기를.
똑같은 책을 읽었는데 점수도 느낌도 감동포인트도 다르다. 남들이 겪지 않는 흔치 않은 증상으로 우울증에 빠지기 싶상이었던 상황에서 나를 끌어올린 건 다름 아닌 독서모임이다. 건강이 무너져 한숨 쉬고 있다가도 모임에 나가면 모든 것이 정상인 듯 삶에 대한 희망이 품어졌다. 기댈 곳 없어 방황하던 나의 마음을 단단히 묶어준 건 책과 꿀벌같은 독서모임 회원들이다. 한바탕 책으로 진지해지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나면 어느새 우울한 기분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