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시내'
태어나 대학교까지 춘천에서 살았다. 닭갈비와 막국수와 호반의 도시 춘천. 고향 떠나 온지 32년차. 나이 들면서 왜 이렇게 틈만 나면 고향 생각이 나는지, 그때는 벗어나고만 싶던 나의 누항, 춘천이 사무치게 그립다. 지금이라도 내려가면 그만이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용산역에서 itx 청춘을 타면 한 시간 후 남춘천역에 도착한다. 남춘천역 바로 앞에 오래된 단골집인 ‘퇴계막국수’가 있다. 여기에 가면 진짜 막국수와 제대로 된 옹심이를 만날 수 있다. 옹심이를 좋아해 많은 식당에서 먹어 보았지만 이 곳만한 곳이 없다. 다른 곳들은 아류의 맛, 본래의 맛을 흉내 내는 것에 불과하다.
여기의 옹심이를 먹어보면 저절로 “이거다! 맛있다!”라는 말이 나온다. 음식이 사람을 안아주니 겨울에는 무조건 옹심이다. 옹심이 칼국수도 있지만 난 ‘옹심이만’이라는 메뉴를 시킨다. 그러면 정갈한 열무김치, 깍두기와 ‘옹심이’만 나온다. 국물과 감자로만 이루어진 쫀득한 옹심이는 씹는 맛이 즐겁다. 저작활동을 좋아하는 나는 씹는 일에 집중하고 원초적이고 충만한 행복감을 느낀다.
한 그릇 뚝딱하고 춘천을 돌아다니면 별걸 안 해도 배도 마음도 든든하다. 옛날 터는 새로이 구획되고 재정비되어 알아볼 수도 없고, 마을은 아파트 단지로 바뀌어 분간이 가지 않지만 큰 틀은 머릿속에 있으니 사방을 구별할 수 있다. 좋아하는 곳도 군데군데 있어 걷는 발걸음 속에는 반가움이 있다. 어릴 때 엄마랑 손을 붙잡고 다니던 시장이나 육림고개는 그대로다. 초입에 육림극장이 있어 고개 이름도 육림고개다.
그때는 놀이가 마땅치 않으니 엄마 손 붙잡고 시장 구경하는 것이 유일한 나들이요 재미거리였다. 시장을 보고 마지막에 엄마와 먹는 찐빵과 된장국이 고소하고 구수했다. 지금도 그 맛은 깊이 박혀 잊혀지지 않고 그날의 엄마와 나의 모습은 머리 속 어딘가에 스틸 사진으로 남아 있다. 그때는 찐빵 하나에도 행복의 원형을 맛볼 수 있었는데. 엄마만 있으면, 찐빵만 있으면 완벽하게 행복했는데 지금은 많은 것을 가졌음에도 왜 만족스럽지 않은지 모를 일이다.
숙박은 ‘Heyy, 춘천’으로 예약했다.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남춘천역에서 가깝다. 춘천에는 시댁도 있고 오빠도 살고 있지만 이제는 하룻밤을 자는 것도 마음이 편치 않다. 남편과 가면 대부분 숙박을 다른 곳에서 해결하는 것이 마음 편하다. ‘Heyy, 춘천’에는 춘관과 천관이 있다.
야마하 스피커가 있는 뮤비룸을 예약했는데 리모컨이 6개나 있었다. 역시나 남편은 TV를 틀지 못해 한참을 헤맸고 내가 해보았지만 되지 않았다. 우리는 집에 TV가 없기 때문에 호텔에 오면 TV 보는 게 낙인데 그걸 못한다고 생각하니 억울했다. 프런트에 도움을 청해보자고 하니 남편이 그건 싫단다. 기가 막혔지만 참고 있었다. 그러다가 남편이 욕실에 샤워하러 간 사이 얼른 프론트에 전화를 걸었다. TV를 어떻게 켜는지 리모콘 조작방법을 알려달라고 했다. 잠시 후 직원이 문을 두드린다.
어렵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모를 만도 했다. 두 개의 리모콘을 조작해야 작동이 되는 거였다. 조식은 토스트나 와플이라고 했는데 우리가 숙박한 날은 와플이었다. 와플은 셀프로 굽게 되어있었다. 반죽이 있고 앞에 작은 스테인레스 컵이 있어 1회용 양을 계량할 수 있게 해놓았다. 딸기크림과 생크림이 있어 발라먹기 좋았다. 구워서 시중에 파는 것처럼 종이에 넣어 들고 먹으면 된다. 커피도 타서 마실 수 있게 해놓았다. 크게 고급스러운 맛은 아니었지만 재미삼아 와플도 굽고 커피도 만들어 마시며 여유있게 고향의 색다른 아침을 맛보았다.
떠나온지 오래되니 가끔 가는 고향은 내가 자란 곳이 아니라 관광지같다는 느낌이 짙다. 결혼하고 시댁과 친정을 다니러 명절에만 와보았지 여유있게 맛집을 투어한다거나 돌아다닌 적이 없다. 조용하고 나른한 춘천을 벗어나고 싶어 몸부림 치던 대학시절. 나는 틈만 나면 청량리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때 누구나 하나씩 갖고 있던 ‘마이마이’하나만 챙기면 여행 준비 끝이다. 남춘천역에서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1시간 반 조금 넘게 가면 청량리역에 도착한다. 내내 음악을 들으며 창밖을 내다보며 혼자 여유를 즐긴다. 신촌, 압구정, 명동을 원 없이 돌아다니며 촌스러움을 벗어내려 무진 애를 썼던 것 같다. ‘아, 서울의 모습은 이렇구나. 서울 사람들은 이렇게 사는구나. 사람도 많고 좋은 것도 많구나!’. 대학교 2학년 때 명동의 ‘롯데백화점’을 처음 가보고 ‘세상에 이런 것이 있구나’ 하고 많이 놀랐다. 신세계 같았다.
29살에 처음 가본 유럽, 런던과 로마, 파리, 루체른 4개 도시를 단체배낭여행으로 다녀왔는데 그때 런던 히드로 공항에 내려 시내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느낀 감정도 마찬가지였다. ‘아, 서양 사람들은 이렇게 살고 있구나!’. 신세계를 보는 것 같았다. 겨우 11일 머물다 온 여행이지만 평생 잊히지 않는 추억으로 남아 있다. 난생 처음 본 남자 승무원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있다. 비행기 안에서 간식으로 준 샌드위치와 고급 바형태의 아이스크림은 내가 꽤나 성공한 사람처럼 여겨지게 만들어주었다. 추운 겨울날이지만 추위 따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루브르박물관에서 만나기로 한 일행을 잃어 혼자 호텔을 찾아가기 위해 탔던 지하철 속 낯선 파리지앵들의 눈빛이 기억 속에 생생하다.
나는 고향에서 살 수 없는 사람이다.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고 ‘이주하는 인류’라는 책 제목처럼 이동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하루 이상 집에 못 있고, 아파서 쓰러지지 않는 한 어떻게든 집 밖으로 나와 돌아다니다 귀가하는 사람이다. 잠은 밤에 자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여간해서는 낮에 눕지 않는다. 고향을 떠날 수 밖에 없는 숙명인가? 한국을 떠나고 싶어 안달했던 젊은 시절의 열망은 유학으로 겨우 잠재울 수 있었다. 유학 생활을 하며 우리 나라가 좋은 점이 많다는 것, 한국인에게는 한국이 제일 살기 좋다는 엄청난 진리와 나만 몰랐던 비밀을 알아버렸다.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가게 될까? 춘천에 갈 때마다 남편과 얘기한다.
남편: 춘천에 내려올까?
나: 언제?
남편: 글쎄, 언제가 좋을까?
나: 나른해서 싫은데, 그래도 오고 싶긴 해. 마음은 편할 거 같애.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나중에 언제 얘기할지는 모르겠다. 물처럼 흘러 흘러 봄시내가 있는 춘천으로 와야만 하는 나는 진짜 춘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