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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 Sep 10. 2024

물놀이에 빠지다

‘남들은 쭉쭉 나가는데 왜 이렇게 앞으로 전진을 못하는 거지?’   

  

정확히 29살, 25년 전. 속초여중에 근무할 때 삼성콘도에서 수영을 1년간 배웠다. 그때는 수영이 그렇게 대중화 되지 않았을 때인데 수영을 배울 생각을 했다는 것이 기특하다. 아마 외로워서였을 것이다. 만날 남자는 없고 퇴근 후 할 것도 없었다. 테트라포드와 집어등만 바라보며 살 수는 없었다. 지속적인 취미활동을 해야겠다 마음먹은 것이다.     


대학교 1학년 교양체육 선택시간이다. 강당에 모여 각 종목별로 선착순 모집을 하는데 동작도 느린데다 결정을 못해 우왕좌왕 하다 인기 있는 종목을 다 놓쳤다. 상상도 못했던 종목만 신청자리가 남아있었다. 그 종목은 수영이다. 춘천 출신이라 목욕탕에 가는 것 빼고는 물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 정태적인 소양을 가진 내가 옷을 벗고 온몸을 휘적대며 물속에서 운동을 한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다. 바다? 그런 건 TV 화면에서나 보는 것이다. 친척들도 바다 근처에 사는 사람이 하나 없고 가족 여행을 가는 경우도 없었다. 하다못해 가족끼리 계곡을 놀러가 본 적도 없다.      




그런 나에게 수영이란 공포였다. 교양체육 수업 첫날, 수영을 가야 하는데 머뭇거리며 울고 있다가 11살 차이 나는 오빠에게 혼나기만 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어떻게 옮겼는지 모를 일이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가 이런 심정이려나?    

  

첫날 강사가 몇마디 했는데 남학생들은 이미 물에 뛰어들어 수영을 하고 있다. 내 눈에는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수영을 할 수 있는 사람만 온 건지, 강사가 무슨 마법을 부린 건지 잘 들 헤엄을 친다. 놀러 온 것이 아니고 학점을 따러 온 것이니 안 할 수도 없고 겁은 나고 상황이 힘들었다.   

  

그러나 언제나 희망은 있는 법. 강사가 수영 초보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가르쳤다. 우선 물 속에서 돌맹이 주워 오기. 물 속에서 가위바위 보 하기 등을 시켰다. 물이 그렇게 무서운건 아니라는 겁 없는 생각을 하게 되자 비로소 물에 뜨게 된다. 가라앉을 줄 알았던 몸이 뜨는 것이다. 일단 여기까지만 해도 반은 성공한 거다. 몸이 물에 뜨는 신기한 경험을 하니 어린아이가 된 듯 마음 속에 풍선이 터졌다. 속이 간지럽고 수영수업을 가는 것이 기대되었다. 호흡은 둘째고 뜬다는 것이 마냥 좋았다.     

 



뜨는 것까지가 최선이었다. 물에 뜨는 게 어디야? 못 뜨는 사람도 많고 물 자체를 무서워하는데...호흡까지는 못하고 떠서 가는 것까지 하고 시험을 치른다. 형편없는 수영 실력과 기억은 거기까지다.  어정쩡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가 속초에서 수영을 배우게 되었다. 카페의 여사장과 우연히 친해져 수영을 함께 다녔다. 삼성콘도가 외곽에 위치해 있었고 그 친구는 차가 없었다. 


서울 출신인데 속초가 고향인 남편을 만나 내려와 부부가 함께 카페를 운영한다. 답답해하며 틈만 나면 함께 드라이브를 하거나 수영을 했다. 나는 외롭고 그 친구는 답답하고 둘이 마음이 맞아 잘 다녔다. 문제는 수영 끝나고 헤어져야 하는데 콘도 안에 있는 피자집에서 넘쳐나는 식욕을 주체하지 못하고 피자를 흡입했다는 것이다. 등산이나 수영을 하고 나면 에너지도 많이 소진되고 혈액순환이 잘 돼서 그런지 왕성한 식욕이 발동한다. 배도 고프고 뭔가를 해냈다는 뿌듯함에 자축을 자주 했다.     


나는 나대로 그 친구는 그 친구대로 신세 한탄도 곁들였다. ‘왜 여기로 시집을 와서 이렇게 사는지 모르겠다’로 시작하는 그 친구의 한탄을 들으며 ‘결혼할 상대라도 있으면 좋겠다’라고 맞받았다. 결혼을 못하면 못해서, 결혼한 사람은 그 상황에서 불만이 있다. 싱글의 자유로움과 커플의 여유는 서로 영영 가질 수 없다는 듯 아련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위로했다.     

 

‘물고기도 아닌데 물 속에서 수영을 한다고?’ 운동을 잘하는 사람들은 흡수력이 빨라 그런 것이 신기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자전거도 못타는 나는 수영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25년 전 배운 수영실력이 그대로다. 5년 만에 가도 뜨고 10년만에 가도 물에 뜬다. 몸으로 익힌 것은 잊히질 않으니 몸은 믿을 만하다. 뭐든지 어렸을 때 익히는 것이 가성비가 좋다. 수영을 배워 놓으니 물가에 가면 그 어떤 다른 놀이보다 물놀이가 재미있다. 재미있는 놀이라고 하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단연 수영을 꼽을 수 있겠다.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가도 수영장이 있는 곳을 고른다. 넷이 물 속에서 한참을 놀다 스낵바에서 뭐라도 시켜 맥주와 함께 먹으면 어느 재벌집 마나님이 부럽지 않다. 큰 사치를 부린 듯 마음이 호화롭다. 딸들도 그 날들을 잊지 못하고 입만 열면 다시 가고 싶다고 말한다.   

   

호텔이나 리조트를 알아볼 때 수영장은 필수다. 먹고 걷고 하는 것도 좋지만 수영한번 하고 사우나를 곁들이면 여행이 완성되는 기분이다. 경주에 있는 작은 신상호텔을 갔는데 수영장이 생각보다 컸다. 들어가 보니 공도 있고 튜브도 있었다. 아이들 놀라고 여러 가지 물놀이 도구를 띄워놓았나보다. 애기들이 갖고 노는 거라 생각했는데 슬슬 장난기가 발동했다. 어른들이라고 공놀이를 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 보는 사람도 없고 물 속에 아무도 없으니 물 속에서 공놀이를 해볼까? 남편과 물 속에서 비치발리볼 놀이를 했다.  


    



애들이 어렸을 때는 워터파크에 자주 갔었다. 부모들이 어린아이들과 공으로 놀아주는 걸 보았다. 그런 물속 공놀이를 내가 하게 될 줄이야. 그것도 아이들이 아닌 남편과 말이다. 단순한 놀이는 사람을 단순하게 만든다. 내가 던진 공을 남편이 못 받으면 그렇게 짜릿할 수가 없다. 남편이 던진 공을 받으려다 물속으로 빠져버린다. 어쩌다 받아 치면 또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아, 행복 별거 없구나. 나랑 놀아줄 사람 한명만 있으면 되네. 몸을 움직이는 게 좋구나. 머리 비우는 데는 놀이나 운동이 최고구나’ 단순한 원리를 깨닫고 오랜만에 아이처럼 웃고 놀다 경주의 밤을 보내고 돌아왔다. 물놀이는 원초적인 행복을 선물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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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스의 시간은 달력이나 시계로 계산할 수 있는 수치적 시간, 즉 코로노스의 시간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얼마나 창조적이고 자유롭고 적극적으로 카이로스의 시간을 살 수 있는지가 치유의 결정적 요인일 뿐 아니라 행복한 삶의 기준점이 되지 않을까, 당신을 기쁘게 하는 모든 일 중 하나를 골라 오늘부터 시작해보자.     

 

* 출처: 감수성수업 (정여울,김영사,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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