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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 Sep 13. 2024

"누우세요!"

수영강사: “누우세요”

나: “어떻게 누워요? 물에 빠지잖아요오오”

수영강사: “그냥 누우세요”

나: .....(?)     


배영을 배울 때 강사가 했던 한마디. ‘누우세요’.


겨우 뜨기만 했던 사람이 자유형을 배우니 호흡이 자유로워졌다. 자유자재로 물 밖으로 나와 호흡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물에 얼굴이 들어가지도 않는 배영이 뭐가 어렵냐고 할 수도 있겠다. 몸을 뒤집고 물에 온전히 몸을 맡긴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두려움을 불러 일으켰다. 발이 닿으니 안 뜨면 일어나면 될 일이지만 수영을 배우러 와서 물에 안 뜰거면 무엇을 한단 말인가?      


‘물이 침대가 된다고?’ 어떻게 이걸 받아들여야 할지 걱정이다. 모든 건 마음 먹기 달렸다는 어렵고도 쉬운말. 마음먹기가 그렇게 잘 되면 시험 전날 노래방 가는 사람은 왜 있으며, 결혼하고 바람 피는 사람은 왜 있는가? 알콜 중독자는 생길 수 없는 일이다. ‘마음 먹기만큼 어려운 도 닦기가 또 있을까?’ 이미 내 마음은 두려움에 푹 젖어 있다. ‘물에 누우라니? 어떻게?’   

   



‘알려 줘야 할 거 아닌가? 그래야 눕던지 말던지 하지?’ 강사는 우리가 자유형을 마스터 했기 때문에 배영은 쉽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보다. 잘 되는 사람 입장에서는 쉬운 일일 수 있다. 두려움을 없애고 힘을 빼고 편안히 눕는 것이 뭐가 어렵단 말인가? 그건 잘 되는 사람들 얘기다. 물에 빠질까 염려되어 조금 가다 서고를 반복했다. 용기를 내고 다시 누워본다. 중요한 건 힘빼기. 처음에는 키판을 잡고 팔을 쭉 뒤로 펴고 눕는다.      

그러다가 강사가 어느새 내가 모를 때 키판을 쓰윽 하고 가져가 버린다. 알듯말듯하다. 공포가 밀려오는 순간 몸에 힘이 들어간다. 그래도 공포심을 이기고 물장구를 계속 친다. 머리를 들지 않고 간다. 물을 베게 삼아 천장을 보며 배영을 하고 있다. 호흡 하지 않아도 되는데 숨이 찬다. 물장구를 어찌나 세게 차는지 심장이 마구 뛴다. 성공이다. 배영이 이런 거구나. 심장이 뛴다. 기쁘다. 수영을 통해 순수한 즐거움과 기쁨을 알게 된다.      



순도 100% 기쁨이다. 배영을 할 수 없었던 어제와 배영을 할 수 있게 된 오늘은 다르다. 배영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자유형만 하던 사람이 배영할 줄 안다는 얘기는 2가지의 영법을 하게 되었다는 가슴 벅찬 일이다. 어려운 물산을 또 하나 넘었다. 넘어보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산 밑에서 바라볼 때의 산은 거대해 보인다.      


배영을 통해 삶의 이치를 깨닫는다. 힘을 주지 않고 유연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 중요한 일일수록 긴장을 하기 마련인데 그럴수록 힘을 빼야 한다. 나이가 들고 시간이 지나 보니 그렇게까지 긴장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 순간, 그 상황에서는 중요한 일이다 보니 기본값이 긴장이었다. 


사람들 앞에서 창피당하기 싫고 나의 빈약한 실력이 드러날까 봐 경직되어 있었다. 발표라도 하려고 하면 심장이 굳어버려 로봇처럼 할 말만 하고 내려왔다. 어떤 상황에서도 재치와 유머를 잃지 않으려면 마음에 얼마나 여유가 있어야 하는걸까? 많은 사람이 주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편안하게 풀어가며 좌중을 압도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 없다. 긴장하며 떨고 있는 다른 사람을 다독여주기까지 한다. 마음 편히 먹으라고. 괜찮다고.     


삶의 고비고비, 긴장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처럼 살아낼 수 있었을까? 여유 부리면 다 잘 될 거라고 생각하기에는 상황이 녹록하지 않았다. 사범대학에서 교육학과을 전공했는데 그때는 사범대학을 가면 졸업과 동시에 발령이 났었다. 중, 고등학교에 교육학이라는 과목이 없으니 영어교육과와 영문과에 가서 수업을 듣고 교직을 이수했다. 성적이 좋은 학생들은 영어교육과에 그 나머지 학생들은 영문과에 들어가서 수업을 들었다.

     

성적이 나오기 전날 밤 애를 끓이며 잠을 못잤다. 지나고 보면 별일 아니지만 그 때는 어디에서 수업을 듣느냐가 자존심과 연결되어있었다. 그렇게 마음을 졸였건만 4학년 때 시스템이 임용교시로 바뀌었다. 어디에서 부전공을 했느냐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없던 시험이 생기고 임용고시에서 합격해야 교사가 될 수 있었다.

      



호주 멜번으로 유학을 갔다. 호주는 대학원이 3학기다. 영어권 국가 중 가장 짧은 학기에 학위를 받을 수 있어 호주를 택했다. 그때도 학위를 딸 수 있는지 아닌지에 얼마나 신경을 곤두세웠는지. 학위를 얻고 영어 실력도 향상시켜 장학사가 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열심히 해서 학위를 취득해 돌아왔고 연구도 열심히 했다. 그러나 건강이 무너지고 장학사는커녕 퇴임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삶에서 힘을 빼고 살 수 있는 순간이, 시기가 있던가? 내가 어떻게 하든 편안히 누워도 되는 바닥이 있던가? 조금만 실수해도 비난받고 시기를 못 맞춰도 열등한 인간으로 취급받는다. 남들과 끊임없이 비교되고 숨 막히는 경쟁 속에서 살아간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다 믿고 맡기며 누울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문득 생각해본다. 평생 살면서 편안히 누워 본적이 있었나? 나이에 맞는 과업을 이루느라 바빴다. 대한민국의 모든 누구나처럼. 치열하게 살지 않으면 자신의 삶을 꾸려갈 수 없으니 잔뜩 긴장해서 살았다. 학생 때는 성적 때문에, 직장에서는 남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실수하지 않으려고. 결혼해서는 가정을 잘 꾸려가고 싶은 마음에, 딸만 둘 둔 엄마는 퇴근하기 무섭게 총알택시마냥 차를 몰고 집으로 달려갔다.   

   

특별히 배영을 배울 때 떠올랐던 여러 가지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처음으로 배영에 성공한 날 얼마나 대단한 일이라도 해낸 듯 뿌듯했던지. 수영 배워놓길 잘했다. 접영까지 하는 할머니로 늙고 싶은 나의 작은 꿈이 실현될 거 같아 기분이 좋다. 딸이 아기를 낳아, 할머니가 되면 수영장에 꼭 데려오고 싶다. 물속에서 원초적인 즐거움을 느끼며 손주랑 수영하고 싶다. 나도 아기에게 배영을 가르칠 때 자신 있게 말할 거다. ‘누워봐’. 그리고는 뒤에서 손을 잡아 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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