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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 Sep 20. 2024

사랑의 또 다른 이름

각자 태어난 두 나무가 서로 몸을 끌어 가까워져

담을 만들고 물을 흐르게 하고

서로에게서 솟아난 영감은 서로 엉키고

누구도 그들의 엉킴을 풀지 못하는 것

그것이 인생의 전모라지만     

이 갈피를 누가 정해줄 수는 없겠다 싶게 

무기력한 밤은 밤과 섞이고

언제 멈출지 모르는 발소리는 발소리와 섞여

마침내 공원 앞에 도착했습니다.     

공원의 불이 하나둘 꺼지고 있었습니다.    



이병률 시인의 ‘누군가 이토록 사랑한 적’ 시집 중 ‘공원 닫는 시간’이라는 시詩다. 따로 태어나 한 몸인 듯 가정을 이루어 살아가는 부부가 생각나는 시다. 부부마다 사연과 상황이 다르지만 부부는 공유해야 하는 부분이 많다. 각자의 생각과 몸이 있지만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결혼한 후 26년 동안 하루도 남편 생각을 하지 않은 날이 없다. 다른 객체이지만 내 영혼과 몸의 일부가 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남편을 떠난 나는 생각할 수 없으며 나를 떠난 남편도 온전하지 못하다. 객관적인 관계의 자리에서는 더 그렇다. 누구누구의 부인, 누구누구의 남편으로 우리는 존재한다.      


아이가 있으면 누구누구의 부모로 역할이 주어진다. 아빠가 해야 하는 역할, 엄마가 해야 하는 역할이 있고 둘 중 하나가 없으면 그 자리를 메우기가 어렵다. 부부만큼 유기적으로 얽힌 관계는 없다. 때로는 보호자이고 애인이고 친구이며 남매이자 멘토이다. 서로를 성장시키는 관계가 가장 바람직하다. 부부마다 천의 얼굴을 하고 있겠지만 서로를 성장시키고 배움을 주는 관계면 더 바랄게 없겠다. 


상대방을 고치려고 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 나는 변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에게 변하라고 하면 누가 좋아할까? 양보도 하지 않으면서 상대의 인내만 바란다면 미래는 없다. 사랑, 눈물, 미움, 원망, 연민, 동정등의 감정이 뒤섞이면 무엇이 나오게 될까? 영어 사전에는 없다는 단어, .      


정으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 흔해서 정이라는 단어에 큰 감흥은 없지만 이 단어보다 부부관계를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없다. 사랑 10%, 미움 55%, 연민 35% 등으로 정을 분석할 수 있을까? 사랑 30%, 미움 40%, 연민 30%를 섞으면 정이 될까? 아이를 키우며 배우자와 느꼈을 수많은 기쁨과 인내의 시간은 쉽게 정의할 수 없다.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태어나 큰 일을 한 것 같다. 내 아이만 보인다. 잘 걷지도 못하는 걸음마로 환히 웃으며 걸어오는 아이의 얼굴을 공유한 단 한 사람. 토하고 설사하는 아이를 어쩌지 못해 둘이 밤을 환히 밝히며 지새울 때 유일하게 옆에 있어 주는 한 사람. 아이의 모자람을 토로해도 흉보지 않을 사람. 상 받아 왔을 때 똑같이 아이를 칭찬해주고 기뻐해 줄 유일한 사람. 남편이다. 어떻게 아내를, 남편을 사랑이라는 감정에 다 담아낼 수 있을까? 사랑보다 더 밀도 있고 큰 단어. 정. 그것에 기대어 살아보련다. 인내하며 진흙 속에서 꽃 한 송이 피워내 보자.    

  



조카가 얼마 전에 결혼했는데 조카며느리와 첫 통화를 했다. 결혼식을 끝내고 며칠 후 하는 통화라 이것저것 얘기하다가 나도 모르게 인내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내 버렸다. 이런 말을 안하려고 했는데 제일 하고 싶은 말이었나보다. ‘결혼은 곧 인내’라는 공식이 머릿속에 있었나 보다. ‘인내 없는 결혼이 있던가? 가능하기나 할까?’ 결혼과 동시에 인내의 역사는 시작된다. 하나하나 모든 것을 맞춰 가며 자신을 비워야 한다. 자존심도 버리고 낮춰가며 상대방을 생각하고 배려해야 한다. 혼자 살 때와는 많이 다르다. 그 원동력은 무엇일까? 사랑? 책임? 공정? 여러 가지가 섞인 감정일 거다.    

 

식구들의 생일날 아침 미역국은 기본이고 잡채와 불고기, 여러 가지 반찬을 만들었다. 4명의 생일을 26년간 했으니 어림잡아도 104회. 막내가 결혼하고 8년 뒤 태어났으니 어림잡아 100여회다. 50대 중반이 되니 누구의 생일이 다가와도 아무것도 하기 싫다. 직장 다니면서 매번 식구들의 생일날 잡채를 무치고 불고기를 재우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이들 어렸을 때는 계절마다 옷을 사서 입히고 남편의 와이셔츠, 속옷까지 챙겨야 했다. 나의 옷을 고르는 것보다 식구 세 명의 옷을 고르고 사는 일이 더 많았다.   

   

남편도 우리를 위해 눈물 나는 희생을 했다. 이런 것은 어떤 메카니즘으로 가능할까? 가정은 뿌리다. 나를 지탱하는 뿌리. 뿌리가 썩으면 온전히 서 있기 힘들다. 뿌리가 튼튼하고 건강해야 그 위에 바로 서서 가지도 나뭇잎도 열매도 맺을 수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한 자리에 버티며 서 있다. 옆에 있는 나무가 햇빛을 다 받으려 나를 가리면 조금 더 위로 올라가겠다고  발돋움을 하고, 벌레가 다가오면 강한 향을 발휘해 갉아먹지 못하도록 한다. 비가 오면 물을 저장해 뿌리 아래로 골고루 수분을 섭취하도록 온 힘을 다 한다. 

    

그렇게 가꾸며 가정을 지킬 때 봄도 지나고 여름도 견디며 선선한 가을도 오고 또 겨울도 맞을 준비를 할 수 있다. 바람 잘 날 없다는 말이 있다. 내가 건강해도 남편이 아프면 심란하다. 부부가 아무 일 없어도 아이가 우울해하면 걱정이 된다. 식구 네 명이 아무 일 없어야 편안하게 웃을 수 있다. 살아오면서 그런 날 몇 날이나 되었나? 온갖 비바람과 눈보라와 뜨거운 태양을 맞으며 그대로 서 있는 나무처럼 부부는 어떠한 어려움도 함께 맞으며 그 자리를 지킨다.     


그렇게 우리는 살면서 더 부부다워지고 사랑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으로 하나가 된다. 사랑은 오히려 단순한 단어다. 단순한 호기심도 사랑일 수 있고 숭고한 희생도 사랑일 수 있다. 그러나 부부 사이의 감정은 사랑보다는 더 포괄적인 단어가 필요하다. 그것을 정이라 부르고 싶다.     
우주라는 거대한 공간은 정확히 알 수 없으니 상상조차도 어렵다. 가늠되지 않는 공간에서 점처럼 보이는 작은 지구에 사는 우리. 유일한 짝이 되어 주었으니 소중한걸로 따지면 우주만큼이다. 미워하지 말고 사랑해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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