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lbourne
유학 기간 동안 많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유치원교사부터 고등학교까지 다양한 교사를 만났다. 관심 분야도 조금씩 달라서 폭넓은 이해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경기도나 서울에서 온 교사들과의 만남, 미대를 나와 뉴질랜드에서 공부하다 온 후배와의 만남, 공부를 꾸준히 하고 싶어 하는 후배와의 대화 등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 관심사와 고민을 나눌 수 있었다.
학교와 집만을 오가느라 교사들이 대화 상대의 전부였으니 다른 직업과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의 만남을 오래전부터 기다려 왔는지도 모른다. 중학교 현장에서 갖고 있는 문제만큼이나 그들도 많은 열정과 문제로 고민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후배들은 아직 직업을 가지지 못한 상태여서 졸업 후 무엇을 해야 하나로 힘들어했다. ‘가능성이 많아서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으니 모두들 자신의 사정보다는 남의 상황이 더 나아보이는가보다.
교회에서 만난 이민 온 지 10여년이 넘는 후배들과의 대화, 교환학생으로 와 있는 어른스럽고 예쁜 이화여고 2학년생과의 친분, 군대를 제대한 후 영어를 배우기 위해 온 후배들과의 대화는 나를 10여년전, 20대로 돌려놓았다. 나이를 잊고 그들과 얘기하고 아파했다. ‘나는 20대에 무엇을 바랐고 무엇을 위해 살았나?’ 생각해보면 허송 세월을 보냈다는 후회가 많이 들었다.
그런 후배들만 만난 건지, 아니면 유학 오는 사람들이 인생을 알차게 보내서 그런 건지, 모두 하루하루를 알차게 보내고, 미래에 대한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었다. 종교생활, 공부, 일 여러 가지를 열심히 잘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호주는 전반적인 분위기가 한국과 비교하면 여유로웠다. 전체적인 흐름이 그렇다 보니 만나면 바쁜 기색 없이 여유 있게 멜번을 느끼고 즐기며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외국인 친구들은 많은 자극을 주었다. 일본, 중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홍콩친구들이 있다. 나보다는 젊은 나이라 많이 어울리지는 못했지만 수업을 같이 들으니 친해졌다. 나의 영어 이름은 ‘Jennifer’. 그들은 친근하게 내 이름을 불렀다. 수업에 들어가기 전 휴게 공간에 모여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그들은 스스럼이 없었다. 나는 성격도 내성적인데다 영어도 잘 안되니 간단한 얘기나 수업에 대한 얘기를 주로 나눴다. 인도네시아 친구들은 성격이 활발하고 사교적이다. 유머도 많아서 무슨 얘기를 하든 잘 웃고 받아준다.
조별 과제를 함께 해야 하니 친해질 수밖에 없다. 함께 수업하고 발표까지 해야하기 때문에 수업 시간 외에 따로 만났다. 자료를 모으고 역할을 나눈다. 실제로 수업을 해야하는 상황에서는 아이디어가 필수다. ‘재미있는 콘텐츠로 수업기법을 연구해서 발표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전문분야인 수업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것이라 크게 막히는 것 없이 소통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의견이 조금 달랐지만 그런대로 잘 절충할 수 있었고 도와가며 수업발표를 마칠 수 있었다. 함께 어려움을 나눠서인지 발표가 끝나고 많이 친해진걸 느낄 수 있었다.
일본 친구들은 조용하지만 친절하게 다가왔다. 나이대가 다르다보니 가까워지기는 어려웠지만 대화를 이어가기가 어렵지는 않았다. 그들은 한국에 오고 싶어했고 나는 일본을 가고 싶어하니 자연스럽게 할 말이 많았다. 서로 상대국을 가 본 경험이 있으니 얘기가 재미있었다. 한국에 와서 가본 도시, 먹어본 음식, 경험등만 얘기해도 할 말이 넘쳤다. 나도 일본을 여행했던 얘기, 앞으로 가고 싶은 도시에 관한 얘기를 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교수님들은 대부분 친절하다. 특히 영어교육학부의 교수들과 직원들은 공부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잘 도와주었다. 수업내용은 대학원 수업이라 3시간인데 강의, 토론, 발표로 이어졌다. 존(John) 교수님은 특히 기억에 남는다. 과제를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혼자 고민하다가 교수실로 찾아갔다. 직접적으로 고민에 대한 내용을 얘기했다. 대답은 명쾌했고 바로 해결되었다. 답을 제시해준 것이 아니라 길을 안내해주었다. 나를 목적지에 데려다 준 것이 아니고 가이드해주었다. 길이 잘 보여서 내가 잘 찾아갈 수 있도록.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은 수업 첫날, 쉬는 시간에 샌드위치를 제공해주셨다. 색색깔의 식빵안에 다양한 재료를 넣은 샌드위치가 은쟁반에 놓여있었다. 깜짝 놀라는 것도 잠시, 알고보니 사모님이 샌드위치를 손수 만드셨다는 것이다. 호주 마트에 넘치는 것이 샌드위치인데 사모님이 학생들 먹으라고 직접 간식을 만들었다는 것에 감동이 넘쳤다. 수업 내용도 훌륭했지만 그 샌드위치가 기억에서 잊히질 않는다.
또 한 분 잊을 수 없는 교수님은 로즈마리 (Rosemary) 교수님이다. 외국인 학생들의 리포트나 과제를 교정해주는, 이름만큼이나 인격에서 좋은 향을 풍기던 분이다. 인상 쓰는 일 없이 항상 웃으며 많은 학생들의 과제를 즐겁게 수정해주셨다. 아무리 형편없이 써도 로즈마리 교수님이 계시니 걱정되지 않았다. 자존심도 있고 죄송해서 최선을 다해서 쓰긴 했지만 말이다.
열정적으로 가르치고 학생들을 존중해주었다. ‘멀리 외국에서 공부를 하겠다고 와서 그런걸까? 아니면 교수 평가를 잘 받으려고 해서 그런 걸까? 원래 이 사람들의 품성이 훌륭해서일까? 원인이 뭘까?’ 를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도 있다. 대학교 때 만났던 교수님들과는 판이하게 느낌이 달랐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손을 내밀 수 있었다. 궁금한 것이 있어 이메일을 보내면 저녁에는 반드시 답장이 와 있다. 얼마나 놀랐던지? 공부하는 것이 어렵기는 했지만 그건 개인의 역량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지 시설, 교수진, 시스템은 모두 훌륭했다.
공부하면서 불편했던 것은 영어실력이 부족하고 성격이 수줍어서 활동적으로 발표를 못하는 것이었다. 스텝들은 학생들이 충분히 연구하고 실력을 쌓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공부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상담할 수 있는 어시스턴트가 있었고 질문하기도 자유로웠다. 수업 내용을 이해하고 과제하고 수업을 듣는 친구들과 소통하는 개인적인 영역을 제외하면 공부하기 좋은 조건이다.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한국인 선배도 만났다. 호주현지인과 살고 있는데 저녁에 집에 초대받았다. 라자냐를 준비해주었는데 로컬음식이라 그런지 맛있었다. 가정집에 여러번 초대되었지만 대부분 한국인이었는데 처음으로 호주인이 해주는 음식을 먹어본 거라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여러 가지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어딜 가나 사람에게 의지하며 돕고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밖에 없다. AI? 그런 건 어디까지나 보조 대체제일뿐이다. 디지털과 AI로 모든 것을 해결할 것 같이 얘기하지만 아직 멀었다. 사람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