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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 Oct 15. 2024

프랙털(fractal) 만들기

남편: “들어가면 머리 감겨주고 샤워시켜주는 통 없나? 세차장에서 세차하듯이 말이야. 비누거품 나오고 행궈 주고 마지막에 말리기까지”
나: “그러게 말이야. 문명이 이렇게 발달했는데 우주선 만들지 말고 그런 기계나 하나 만들어 주면 참 좋겠다.”     


남편과 공감하며 나눈 대화다. 나이가 드니 머리 감고 샤워하는 행위도 귀찮다. 아침에 드린 감사기도는 온데 간데 없고 몸을 질질 끌고 다니며 일상의 일들을 겨우겨우 해낸다. ‘온전한 삶이란 뭘까? 병들어 누워있거나 자신의 몸을 씻지 못할 때도 삶의 의미가 있을까? 살아야 하나?’     


부정적인 생각을 하다 보면 혼자 굴을 파고 들어가게 된다. 조금만 아파도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것 같고 남편과의 관계가 잠깐 삐끗해도 세상에 혼자인 거 같은 기분이 든다. 생각은 생각에 꼬리를 물고 점점 불안을 증폭시킨다. 제일 좋은 방법은 생각을 한 번쯤 놔버리는 것이다. ‘될대로 되라지’ 하고 꽉 쥐고 있던 걸 놔버리는 건 어떨까?     


경험에서 얻은 생각이다. 한가지 직업으로 인생을 보낸 나 같은 사람에게 마치 목숨줄과도 같았던 일을 그만둘 때의 기분이란 어떨까? 나의 존재 가치가 없어지는 것 같았다. 정기적으로 들어오던 수입이 끊기는 일은 마치 내가 누군가에게 종속되는 기분이 들게 했다. 대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조달하고 임용고시 시험 준비 중에도 학원 강사일을 했다. 발령 나서 퇴임할 때까지 월급이라는 것이 나를 지탱해주었다.

     

남편이 있지만 돈을 달라고 얘기해본 적이 없다. 내 수입으로 모든 것을 충당하며 경제적인 자유로움을 느꼈다. 풍족하지는 않아도 남에게 손을 벌릴 정도로 궁색하지는 않았다. 성인이 되어 내가 나를 책임진다는 것은 경제적인 것이 전부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던 내가 일을 그만둔 것이다. 어찌 보면 나는 이제 쓸모가 없게 되어버렸구나. ‘나는 다른 사람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아야 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한동안 나를 힘들게 했다. 다른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이른 나이에 명예 퇴임한 나는 연금이 적다. 그거라도 나오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은 하지만 월급 받을 때에 비하면 적은 액수니 마음이 풍요롭지 못하다.     


놓아버리니 불편하지만 그런대로 살아진다. 많은 시간과 자유로움을 얻었다. 우울하기만 했던 나의 회색 하늘이 푸르게 변했다. 완벽한 상황이라는 것은 없다. 다소의 부족함이 있어도 만족하면서 사는 것이 전부라는 생각이 든다. 불평하기 시작하면 어떠한 상황에 놓여도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죽을 것 같지만 한번 놓아버리니 몸도 마음도 가볍다. 모든 것을 가볍게 바라보고 곱씹지 않으려 노력한다. 남들의 말로 혼자 마음속에 불을 지피던 습관도 버리려 노력한다. 별 뜻 없이 한 말에 상처를 받으면 나만 손해다. 잘 안되지만 조금씩 바꾸려고 노력한다.      


의자는 의자로서의 기능이 있다. 의자가 부서지면 원래의 기능을 상실하게 되니 버린다. 이런 논리를 인간에게 적용했을 때 ‘인간의 기능은 원래 무엇인가?’를 생각해본다. 없다. 인간은 쓸 데 없는 존재이다. 존재 자체로 의미가 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해서 인간을 의자 내버리듯 할 수 없다. 실존주의는 ‘존재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주장한다.   

   

화려한 그림이 있는 퍼즐을 생각해보자. 가장자리로 갈수록 아무런 무늬가 없다. 심지어 하얀색인 퍼즐도 있다. 그러면 전체 퍼즐에서 그 조각은 역할이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 하얀색 퍼즐까지 맞춰져야 전체 그림이 완성되는 것이다.  

    

까뮈의 ‘변신’에서 주인공은 어느 날 갑자기 벌레로 변한다. 일할 수도, 방에서 나올 수도 없고 가족들에게 골칫거리, 귀찮은 대상이 되어버린다. 그 삶은 의미가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어떠한 경우라도 삶은 지속 되어야 하고 생명은 소중하다. 그런 시각으로 우리의 생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힘든 상황에서 극한 선택을 하기 쉽다. 나이 들면서 여러 가지가 숨을 조를 때 어떻게 생을 마감해야 할지 생각해본다.     

 

죽음은 계획할 수 없다는 점에서 나 같은 계획형 인간에게는 그 난감함이 극에 달한다. 그러니 ‘럭키 장원영’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무조건 오늘 하루를 긍정적인 무늬로 만들려고 노력해야한다. 그러면 전체 인생이 긍정의 무늬로 물들지 않을까? 예쁜 무늬의 프랙털을 하나씩 완성하다 보면 어느새 내 인생은 볼만한 프랙털 모형이 되지 않을까?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면, 움직임을 포함한 삶의 안정적인 패턴을 만들어 보세요. 벗어나고 싶다면 노력이 필요합니다. 힘들어서 들이켜는 술 한잔, 나태한 삶의 패턴, 모든 걸 놓아버리는 태도. 이러한 것들은 힘듦을 가중시키는 일밖에 되지 않습니다. 힘든 순간, 나를 지키고 일어나게끔 만들어 주는 건 결국 내 마음가짐과 나뿐입니다.




예상치 못한 증상으로 마음과 몸이 무너져 있어 별의별 우울한 생각에 휩싸여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아픈 증상들이 새 삶을 살게 만들었다. 그러한 질병이 없었다면 나는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었을 것이다. 물론 고개를 넘어오는 동안 방황을 했었다. 외부로부터의 변화는 나를 새로운 곳으로 옮겨 놓았고 혁신적인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충격적인 일이 맹공을 펴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하며 가공하느냐가 중요하다. 새로운 길로 가는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다. 어떠한 경우에도 일상을 살아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 누구의 탓도 아닙니다. 그냥 살다 보면 그런 일도 생기는 것이죠. 그럴 때일수록 유연하게 대처하다 보면 삶에 틈이 생기게 됩니다. 그 틈으로 알 수 없는 행복이 들어오기도 하고, 귀한 사람이 들어오기도 합니다. 지나간 건 지나간 대로,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대로, 그렇게 그대로 놓아 줄 수 있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그런 사소하고 중요하지 않은 것에 내 기분과 시간을 뺏길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 틈 사이로 좀 더 행복한 것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탓으로 틈을 메우지 마세요.     


*출처: '결국 무엇이든 해내는 사람' (김상현, 필름, 2022)

**출처: '결국 무엇이든 해내는 사람' (김상현, 필름,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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